가슴치는 기도 속 공감·위로·성찰의 작은 불 밝혀라

게티이미지뱅크


애곡(哀哭). 큰 고통과 재난에 직면해 슬피 우는 울음을 말한다. 호곡(號哭)이라고도 한다. 성경은 호곡을 ‘큰 소리로 쓰라리게 애통한다’(lamented loudly and bitterly)고 표현한다.(창 50:10, NIV)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곡할 때 자신의 가슴을 치거나 옷을 찢었다. 또 머리를 헝클어뜨리거나 재(티끌 흙 먼지)를 머리에 끼얹었으며 금식을 하기도 했다. 이 모든 행동은 극한 슬픔과 분노, 참회와 처절한 자기 부인을 나타내는 관습적 행동이었다. 애도 행위를 통해 죽은 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죽은 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적으로 기울이려고 노력했다.

성경은 “울 때가 있고…슬퍼할 때가 있다”(전 3:4)고 말한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으며(요 11:33) 눈물을 흘리셨다.(요 11:35) 또 불의의 사고에 대해서도 정죄가 아니라 회개를 명하셨다.(눅 13:4~5) 이태원 참사 앞에 기독교인은 어떤 호곡을 할 수 있을까. 기독교계 원로들은 피해자 유가족에 깊은 애도를 전하는 동시에 국가와 교회가 다음세대를 지키는 일에 만전을 기할 것을 한목소리로 당부했다.

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는 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손주 세대인 희생자들이 목적이나 이유, 보람도 없이 이번 사고로 스러진 게 참 기막히고 비통하다”며 “부디 주님께서 이들을 위로해주시길 바란다”며 한국교회가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할 것을 당부했다.

송길원 하이패밀리 대표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말한 ‘나는 애도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를 언급하면서 “지금은 희생자와 그 가족을 위해 기도할 때다. 기도 속에 공감과 위로, 성찰과 희망의 작은 불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죽음은 타자화됐다. ‘그들이’ 죽었을 뿐이다. 프랑스의 유대인 철학자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는 이를 ‘3인칭’의 죽음이라 했다”며 “3인칭의 죽음은 여전히 나와 무관한 타인의 죽음일 뿐이다. 이제 1인칭의 죽음으로 환치해야 한다. 3인칭의 죽음을 1인칭으로 그 거리를 좁혀주는 것이 애도”라고 했다.

애도는 회개와 행동의 변화를 요구한다.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희생자 애도와 함께 관련 제도 개선과 시민 안전의식 강화를 강조했다. 손 교수는 “이번 참사를 계기로 우리 국민의 고질병인 ‘안전불감증’을 고쳐야 한다”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경찰의 안전 매뉴얼 등의 제도적 부분뿐 아니라 시민 모두가 안전불감증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안재웅 한국YMCA전국연맹 유지재단 이사장도 “(핼러윈으로) 뻔히 모일 것을 알면서도 당국이 대처하지 않았기에 천하보다 아까운 생명을 떠나보냈다”며 “이번 참사는 100% 인재인 만큼 당국은 향후 이런 사태를 예방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춰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양민경 강주화 박용미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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