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유대 지방에서 두로 시돈의 이방 땅으로 가셨습니다.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방 땅으로 복음이 넘어가는 것은 제자들을 통해서입니다.(24절) 그러면 예수님은 왜 이방 땅으로 가셨을까요.
유대 종교인들이 기대했던 이는 로마를 이기는 경제력 국방력 정치력을 가진 메시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였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특권, 하나님을 남편으로 모실 수 있는 특권,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가르쳤습니다. 욕심이 가득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메시지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에서 이름도 알 수 없는 한 이방 여인을 만납니다. 가나안 여인이라고 하는 이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완벽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다윗의 자손’이란 메시아를 가리키는 말인데, 여기에 ‘주’라는 말이 붙을 때, 이것은 단지 상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신적인 메시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조차도 쉽게 할 수 없는 위대한 고백이 이방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은 놀라셨습니다.
과연 이 여인의 마음에는 어떤 신앙이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그녀에게 한 가지를 질문하십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26절) 이 말은 단지 이 여인을 모욕하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사용하시는 말이 아니라,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향해 늘 사용하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를 여인에게 묻고 계십니다.
그때 이 여인의 입에서 놀라운 대답이 나옵니다. 첫째, “주여 옳소이다”(27절) 여인은 옳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 여인의 겸손이기 이전에 그의 영적 인식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 그것은 짐승과 같은 인생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둘째,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27절) 여인이 말하는 부스러기는 무엇일까요. 이 여인은 흉악하게 귀신들린 딸을 고치기 위해서 왔습니다.(22절) 이 여인은 이 병을 고치는 것을 부스러기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인이 말하는 부스러기의 반대 개념, 떡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입니다. 하나님과의 축복 된 관계에 들어가는 것, 그것은 이방인으로서는 꿈꿀 수 없는 너무나도 놀라운 축복이었습니다. 여인은 자기 딸의 고통을 고치는 것을 부스러기라고 말하면서 자기가 진정 귀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내비치고야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깊이 감동하였습니다. 정작 하나님 백성이라고 하는 유대인들은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방 땅에서 이름도 모를 한 여인이 고백하는 신앙고백은 참으로 놀랍고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축복하십니다. 여인의 딸을 고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주십니다. 떡도 가지고 부스러기도 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큰 믿음은 떡과 부스러기를 구분할 줄 아는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당신의 떡이 무엇입니까. 당신의 부스러기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특권이 전부라고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었더니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많은 축복의 선물들이 있다면, 그 모든 것은 부스러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박지웅 목사(내수동교회)
◇내수동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 소속으로 본질에 충실한 교회가 되기 위해 분투하고 있습니다. 박지웅 목사는 고려대와 총신대학원을 졸업하고 2004년부터 내수동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