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전지를 둘러싼 주도권 경쟁이 뜨겁다. 한국 중국 등 초기에 이차전지 시장을 선점한 아시아 국가의 기업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이들 기업과의 ‘배터리 동맹’이 줄을 잇고 있다. 다른 쪽에서는 ‘쏠린 의존도’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배터리가 기업은 물론 국가 경쟁력의 중심축으로 부상하면서 각국 정부도 힘을 싣고 있다.
6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아시아 배터리 기업을 중심으로 ‘배터리 밸류체인’이 재편되고 있다. SNE리서치는 지난 1일에 올해(1~9월 누적)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점유율을 발표했다. 1~10위에 이름을 올린 건 모두 아시아 기업이었다. 한국 배터리 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를 비롯해 중국의 CATL, BYD와 일본 파나소닉이 포진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아시아 배터리 업체 가운데 한국 기업에 유독 많은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은 합작사를 설립하며 발빠르게 ‘배터리 동맹’을 맺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뛰어난 기술력도 기술력이지만,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이런 현상을 심화한다고 진단한다. 최대 전기차 시장 중 하나인 미국이 중국 기업을 배터리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K-배터리’ 3사의 위상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K-배터리가 유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쟁에서 한국과 중국에 밀린다는 위기감은 또 다른 배터리 동맹을 촉발한다. 유럽의 배터리 제조사들은 최근 배터리 제조동맹체 ‘업셀’을 결성했다. 배터리 밸류체인을 유럽으로 가져와 제조 역량을 강화한다는 취지다. 미국에서는 지난 5월 주요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관련 기업의 연합체인 ‘미국 배터리 독립연합’이 출범했다. 리튬 등 원자재 확보부터 팩 제조에 이르기까지 배터리 전 과정에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일본도 지난해 4월 배터리 공급망 협회를 발족했다.
배터리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면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정부가 나서서 기업과 손을 잡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지난 1일 배터리 제조·소재 기업과 배터리 동맹을 출범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은 2017년에 ‘유럽 배터리 동맹’(EBA)을 만들었다. 유럽 배터리 동맹에는 정부·기업·대학·연구소 등의 500여개 기관이 속해 있다. 리튬 개발 프로젝트는 물론 배터리 셀 개발, 폐배터리 재활용에 걸쳐 70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시장에서 아시아 기업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유럽과 미국에서 자체 생산능력 강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자국 보호주의 행보를 보인다. 한국 정부가 배터리 동맹을 결성한 것도 이런 흐름에 대비하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