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에너지 비상 상황에서 정부가 에너지 수요 효율 제고와 절약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하지만 ‘전시’ 상황에서 정책은 ‘평시’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일고있다. 전 세계가 전력 소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강력한 에너지 절약 대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것과 비교해 강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7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3%지만 세계에서 열 번째로 에너지를 많이 쓰는 국가다. 에너지 효율은 일본·프랑스 등 선진국의 60% 수준이다. 국가 전체로 봤을 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대비 1.7배 이상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에너지 원단위 기준으로는 OECD 36개국 중 33위로 최하위권이다.
당장 눈앞에 닥친 상황도 만만찮다. 무역수지는 지난 4월부터 7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무역수지 적자는 3대 에너지원인 원유·가격·석탄 수입액이 급증한 것이 결정적 요인이다. 지난 10월까지 에너지 수입액은 1587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80% 이상 급증했다.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겨울철에는 더욱 상황이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장·단기 측면에서 에너지 수요 효율화를 꾀하고 있다. 산업부는 지난 6월 에너지 효율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2027년까지 산업, 가정·건물, 수송 분야에서 효율을 25% 개선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에너지 효율화는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대책으로 꼽힌다. 연간 에너지 사용량을 1% 줄이면 에너지 수입을 13억달러 줄이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관련 대책을 살펴보면 이전에 내놨던 ‘캠페인성’ 정책과 대동소이하다. 정부는 공공부문을 대상으로 겨울철 에너지 사용량 10% 절감을 목표로 하는 ‘에너지다이어트10’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다. 일반 국민에게는 ‘에너지다이어트서포터즈’로 에너지 절감 캠페인에 동참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국내 30대 에너지 다소비 기업과는 ‘한국형 에너지 효율혁신 파트너십(KEEP 30)’도 체결했다.
하지만 해외 주요국이 에너지 수요 효율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에 비해 절박함이 떨어진다는 시각도 있다. 유럽은 가스 공급의 45%를 차지하던 러시아산 가스가 전쟁 이후 10% 이하로 떨어졌다. 독일은 연간 에너지 소비량 10GWh(기가와트시) 이상 기업에 에너지 효율화 의무를 부과하는 한편 공공건물 온수 중단, 수영장 난방 금지 등 에너지 절감 조치를 시행 중이다. 슬로바키아에서는 샤워를 2분 내로 끝내라는 지침이, 핀란드에서는 사우나를 가족·친구들과 함께 하라는 ‘생활밀착형’ 권고가 나오기도 했다.
박상서 한국전력 전력솔루션본부장은 “국제 산업용 에너지 요금을 1㎾h(킬로와트시)당 센트로 비교하면 독일이 17, 일본·영국은 16인데 한국은 99로 절반 수준”이라며 “낮은 요금 때문에 소비자들의 자발적 에너지 효율 향상 투자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지나치게 싼 요금이 과소비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