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지만, 파운드리 업계는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반도체 시황이 살아날 때를 대비해 미리 기반을 닦아두겠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갈등이라는 지정학적 요인까지 작용하고 있다.
파운드리 업계 1위인 대만의 TSMC는 미국 애리조나에 공장을 증설할 계획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신규 공장은 2020년 애리조나주에 짓기로 한 반도체 공장의 인근인 피닉스 북쪽에 들어설 예정이다. 투자 금액은 120억 달러로 이전 투자액과 비슷한 규모다. TSMC가 새 공장에 3나노 공정을 도입할 수 있다고 WSJ은 예상했다. TSMC는 “공장 증설을 계획 중이나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TSMC의 신규 투자는 중국의 대만 군사위협 수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 때문에 눈길을 끈다. 미국에 공장을 지어 지정학적 리스크를 낮추는 동시에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는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TSMC가 대만에서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걸 우려하고 있다. TSMC는 일본 싱가포르 등으로 생산시설을 확충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미국 정부는 내년에 반도체 생산시설 관련 보조금으로 390억 달러를 책정했다.
무엇보다 TSMC 행보는 파운드리 시장이 장기적으로 성장을 지속한다는 자신감을 깔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선 향후 10년간 매출이 지금의 배 이상인 1조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한다고 WSJ는 전했다. 당장 1, 2년간 투자를 줄이더라도 보다 장기적 관점의 투자를 이어가야 호황을 제대로 누릴 수 있다. 경기침체 영향으로 반도체 시장이 급격하게 위축되면서 주요 반도체 업체는 최근 들어 감산과 투자 축소에 나서고 있다. TSMC도 올해 투자를 계획보다 10% 줄이기로 했다. 주요 고객사에서 제품 판매 부진을 겪으면서 주문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파운드리 업계 1위와 2위를 차지하고 있는 TSMC, 삼성전자는 주요 고객사에서 재고 조정을 마치는 내년 하반기쯤에 파운드리 시장이 반등한다고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단기적인 투자 조정을 하더라도 꾸준하게 투자를 한다는 기조를 계속 유지할 방침이다. 웬델 황 TSMC 최고재무책임자(CFO)는 3분기 실적 발표 후 가진 컨퍼런스콜에서 “단기적인 불확실성을 고려해 2023년은 신중하게 사업을 관리할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객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투자는 긴밀하게 협력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