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함은 죄악이다. 다음세대가 진리를 진부하게 여기지 않도록 전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당면 과제다. 20년 넘게 기독 출판 최일선에서 140권 넘는 외서를 번역한 홍종락(51) 번역가는 이를 위해 문학을 질문하며 함께 읽자고 말한다.
진부하지 않기 위해선 자기를 넘어서야 한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내면을 들여다 봐야 한다. 이때 독서가, 특히 문학이 도움이 된다. 세계적 기독교 변증가 CS 루이스는 심지어 악마의 눈이 보여주는 것도 직시하자고 말한다. 루이스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통해 인간과 하나님 사이 빈틈을 노려 유혹하려는 악마의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생존 그 자체를 위해 남을 짓밟고 배제하는 악마의 질서에서 벗어나 약한 자를 돕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옮겨가길 촉구한다.
마크 트웨인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통해 기독교의 회개와 양심의 가책에 대한 풍자와 패러디를 그려낸다. 우리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상대화하고 웃어넘길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랭던 길키는 르포 ‘산둥 수용소’에서 율법주의를 벗어난 크리스천, 자신의 행동 규범을 타인의 삶에 들이대지 않으면서도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언제든지 돕는 선교사들을 보여준다. 동서양 24권의 고전 문학을 통해 자기를 넘어서는 독서로 이끄는 책을 저술한 홍 번역가를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출판사 비아토르의 공유오피스에서 만났다.
-책의 서문에서 ‘생계형 독서와 취미형 독서의 만남’을 말합니다.
“‘덕업일치’를 이뤘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일과 좋아하는 일이 만난 겁니다. 기독 출판계에서 문학은 잘 조명되지 못했습니다. 제게 문학 읽기는 대체로 취미형 독서였습니다. 반면 번역을 위한 원서 읽기는 생계형 독서입니다. 그러다가 서양 고전을 100권 가까이 소개하는 688쪽 분량의 책 ‘고전’(홍성사)을 번역하며 사전조사 차원에서 책에 소개된 고전문학 수십 권을 읽게 됐습니다. 출판사의 제안으로 거기 소개된 책 가운데 일부를 가지고 독자들과 독서 모임을 하게 됐고 매회 짧은 강연과 질문지를 만든 걸 모으다 보니 책이 됐습니다.”
-CS 루이스를 비롯해 대가들의 작품을 번역했습니다.
“잉클링즈란 모임에 속했던 CS 루이스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JRR 톨킨은 단어를 가지고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루이스는 기독 변증가라고 하지만, 포교를 위해 혹은 설교를 하려고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차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자기가 진심으로 믿는 바를 들려주려고 했고 ‘나니아 연대기’에선 실제 떠올린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루이스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하기 위해선 설명이 아니라 그 세계를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알았습니다. 비유와 묘사를 적절하게 활용해서 말이죠.”
-‘악마의 눈…’ 책의 제목은 어디서 유래했습니까.
“루이스의 소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다룬 챕터의 제목입니다. 루이스는 독서의 목적을 ‘자기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옥을 ‘자기에게 갇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수용을 위한 독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자신을 벗어나 여러 다른 사람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곤충의 눈으로 보고 더 나아가 악마의 눈으로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악마의 세상을 알고 싶다는 게 아닙니다. 악마의 눈으로 보이는 현실을 직시하자는 겁니다. 악마의 눈에 인간은 잡아먹기 위한 것들인데, 악마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잡아먹기 위해 경쟁하고 배제해야 하는 대상들을 위해서 자기를 비우고 내어주고 사랑하는 일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겁니다.
기독교인들끼리만 사랑을 이야기하면 진부하게 들리기 마련입니다. 악마의 눈을 통해서 보니, 인간에게 왜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지 않느냐란 질문이 생깁니다. 그러다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의가 아닌 자의로 당신을 섬기길 원한다는 걸. 루이스는 본질의 극단화를 이야기합니다. 악마의 눈으로 봤을 때 진리가 더 잘 드러날 수도 있다고 알려줍니다. 선악의 문제로 읽으면 오독하게 됩니다. 사실 악마가 제일 많이 나오는 책은 성경입니다. 하하.”
-책에서 다룬 24권 고전 가운데 한 권을 꼽는다면 어떤 것입니까.
“가장 힘들었던 책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백치’입니다. 명작은 읽고 나서 계속 생각하게 만들고, 내 생각이 돌아가는 방식과 전제와 한계를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이런 질문 앞에 서게 만듭니다. 책에서 한스 홀바인의 그림 ‘무덤 속 그리스도의 주검’이 언급됩니다. 부활은 그런 참혹한 상태를 이겨내고 이뤄진 기적입니다. 회생 불가능성을 직시함으로써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그걸 극복해 내신 하나님의 능력을 제대로 인식하게 됩니다.”
-140여권을 번역한 책 가운데 어떤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라고 답하곤 합니다. 하하. 지난 5월에 출간했지만, 지금은 필립 얀시의 회고록 ‘빛이 드리운 자리’(비아토르)가 떠오릅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신앙의 3~4세대를 거치며 자녀들을 옥죄는 형태를 보이기도 하지요. 미국 남부 근본주의 신앙에서 자란 저자가 스스로 이를 깨면서 성장한 이야기는 이런 한국교회 모습에 경종을 울립니다.”
-번역가의 일상은 어떻습니까.
“하루 번역할 분량을 정해 놓습니다. 제가 초역을 해서 출력하면 어문학을 전공한 아내가 2차로 수정합니다. 그러면 다시 제가 고친 후에 비로소 입력합니다. 일종의 공동 작업입니다. 2000년대 들어서 기독 출판 번역을 시작했는데, 책의 권수보다 어떤 책을 번역했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번역을 하면서 글쓰기를 배웠습니다. 외국 출판사가 제공한 콘텐츠를 재료로 글을 쓰는 근육을 키우는 훈련만 20년 정도 한 것입니다. 책의 끝에 들어가는 역자 후기로 짧은 글을 쓰다가 나중에 CS 루이스 관련 ‘오리지널 에필로그’(홍성사)도 출간했습니다. 세계적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책을 위해 글을 쓰지 않고, 글을 쓰다 보니 책이 된다고 말합니다. 부지런히 글을 써서 문학을 다룬 책의 후속편을 내고 싶습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