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8월 1일, 명동에 있는 ‘77’이라는 카페에서 일하던 일본인 웨이트리스 두 명이 손님들과 외출해 8월 2일에 돌아온 것이 발각됐다. 경찰 조사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조사 결과 카페에 과태료 처분이 내려졌다. 당시 매월 1일은 모든 국민이 전쟁에서 죽은 일본 군인들을 추모하며 경건하게 지내야 하는 ‘애국일’이었다.
1937년 7월 일본이 중국 본토에 대한 침략을 감행했다. 중일전쟁이 시작되자 미나미 지로 총독은 조선인의 ‘황국신민화’를 본격화하기 위해 그해 10월 ‘황국신민서사’를 제정해 모든 국민이 암송하도록 강요했다. 미나미는 또한 매월 6일을 ‘애국일’로 정하고, 신사참배 등으로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일본 군인들을 추모할 것을 독려했다. 전국적으로 신사를 무려 2300개나 건립해 모든 조선 사람이 일본 귀신에 대해 참배할 것을 강요하는 일도 감행했다. 매월 6일로 정한 애국일이 잘 지켜지지 않자 1939년부터는 보다 기억하기 쉽게 애국일을 매월 1일로 변경했다. 애국일에는 카페나 끽다점, 음식점 등에 휴업이 강제되지는 않았지만 이들 업소에서 술을 팔거나 흥겨운 노래를 듣는 것 등은 모두 금지됐다. 웨이트리스가 손님과 함께 1박2일 외출을 한 것은 지극히 반애국적 행동이었던 것이다.
일본인 웨이트리스들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그들에게 누구인지도 모르는 군인들, 이름도 모르고 낯선 불특정 다수의 군인들을 추모하는 날을 지정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일본인 웨이트리스들도 그러한데 조선인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일본인 웨이트리스조차 지키지 않는 애국일을 조선인들이 자발적으로 지킬 일은 없었다. 그들이 강요하는 애국일 행사에서 조선인들이 형식적으로 하는 추모가 추모일 수는 없었다. 조선인들이 비록 강요에 의해 눈을 감고 고개는 숙였지만 추모는 하지 않았다.
9월 11일은 미국이 지정한 ‘애국일(Patriot Day)’이다. 2001년 발생한 9·11테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기념일이다. 테러 발생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져가는 그날의 참상을 기억하고자 지정한 날이다. 물론 사망자들의 이름은 일일이 찾아지고 공개되고 돌에 새겨졌다. 그들의 종교, 국적, 성적 취향 등은 중요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주신 귀한 생명이었다는 것 하나가 중요했다. 심지어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조차도 2005년 미국을 방문하고 무역센터가 바라다보이는 뉴저지주 베이욘에 추모 동상을 세워 미국에 바쳤다. 테러 희생자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진 동판 위에 자기 이름을 새겼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과 함께 그의 이름은 가려졌다. 전쟁을 도발한 그의 추모는 추모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추모나 사과는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는 것이 정상이다. 강요에 의해 될 일도 아니고, 날짜를 정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무엇을 세운다고 될 일도 아니다. 일본 정부에 식민지 지배를 사과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무의미하듯이, 이태원 희생자들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는 사람들에게 애도를 기대하는 것 또한 무의미하다. 80여년 전 일본의 카페 웨이트리스들도 알던 사실이다.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육학과 교수 leegs@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