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영 기자의 안녕, 나사로] “얘야, 산타는 하나님의 배달부란다”

크리스천 부모에게 ‘산타의 유무’는 여전히 난제다. 하지만 우리 삶 가운데 선물 같은 순간들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곱씹다 보면 지혜를 찾을 수 있다. 언스플래시 제공




한 달 앞으로 다가온 크리스마스가 일상 풍경을 바꿔 놓고 있다. 쇼핑몰 카페 식당들은 일제히 캐럴을 울리고 있다. 도심 곳곳엔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휘황찬란한 트리 장식이 세워졌다. 한 백화점에선 ‘트리 인증샷’을 찍기 위해 개장 시간 전부터 입구에 줄지어 선 사람들의 모습이 명품 매장 ‘오픈 런(open run)’을 방불케 할 정도라니 말 다 했다.

이 시기를 지나는 부모들에겐 연중 최대의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산타와 선물’ 문제다. 초등 자녀들이 학교에서 겪는 ‘산타 논쟁’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추리, 인생 선배(동네 형, 언니)들의 귀띔 등이 총망라된다.

미취학 아동을 양육하는 크리스천 부모에겐 더 깊은 고민이 따른다. 대다수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산타 선물 전달 행사’를 하기 때문이다. 통상 진행 절차는 이렇다. 12월 둘째 주를 전후해 학부모 전달사항이 도달한다. ‘산타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달할 테니 아이들이 갖고 싶어 하던 선물을 포장해 보내주세요.’ 산타가 얘기해 줄 아이의 장점과 고쳐야 할 점을 적어달라는 주문도 잊지 않는다.

고민이 시작된다. ‘크리스마스는 산타에게 선물 받는 날이 아닌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예배하는 날인데’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저편에선 또 다른 생각이 휘몰아친다. ‘다른 친구들은 산타에게 선물을 받는데 우리 아이만 못 받으면 속상해서 어떡하지.’

몇 해 전 이 시기를 통과해 온 부모 입장에서 묘안을 찾아야 했다. 홀로 선물 못 받는 아이가 되지 않게 하면서도 성탄에 대한 바른 인식을 심어줘야 했다. 며칠 밤을 기도하고 고민한 끝에 한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보육 시설에서 매달 진행하는 ‘이달의 생일파티’다.

우선 유치원의 요청대로 선물과 아이의 장단점 메시지를 준비해 전달했다. ‘산타 선물 전달 행사’가 치러지던 날, 아이를 만나러 하원길에 나섰다. 예상대로 아이는 아빠를 발견하곤 산타에게 받은 선물을 든 채 자랑하러 달려왔다. 선물을 품에 안은 아이를 데리고 나와 얘길 꺼냈다.

“산타 할아버지가 정원이가 어떤 착한 일을 했는지, 어떤 걸 좋아하고 고쳐야 하는지 모두 알고 있었지요?” “네~” “그걸 어떻게 다 알고 계셨을까?” 잔뜩 들떠있던 아이는 말을 멈춘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아이에게 말을 이어갔다. “유치원에서 매달 친구들이랑 생일파티 하던 거 기억나지?” “네.” “그때 정원이 생일 축하해주는 친구들에게 과자랑 연필 선물 줬었잖아. 그건 아빠가 정원이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친구들한테 고마운 마음으로 준비한 거야. 하나님도 똑같아. 하나님 아들인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선물을 주고 싶은 거야. 그래서 산타를 대신 보내주신 거지. 하나님께선 모든 걸 다 알고 계시지?” “맞아요.” “그래서 보내기 전에 귓속말로 정원이가 어떤 착한 일을 했는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알려 준 거야. 이제 알겠지?” “아하~.”

세속적 크리스마스에 물든 아이들에겐 산타가 12월에 찾아오는 구세주일지 모른다. 하지만 산타가 사라져야 아이에게 예수 탄생과 구원의 의미를 알려줄 수 있다고 선 긋는 건 지혜가 아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10)

하나님의 창조 세계 안에서 ‘산타의 유무’는 무서워할 키워드가 아니다. 한 해 동안 신앙적 양육의 길을 잘 따라와 준 아이에게 기쁨의 선물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이 창조하신 배달부로 산타를 소개할 수 있다면 말이다. 산타가 있든 없든 하나님은 있다. 크리스천 부모라면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캐럴 가사 속 ‘울면 안 돼’의 이유는 ‘산타 할아버지가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 기쁨과 슬픔은 물론 우리의 죄까지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