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용시장에서 대학 졸업 학력 요건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빡빡한 수급 상황이 학력 기준을 없애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싱크탱크 버닝글래스인스티튜트에 따르면 11월 현재 미국에서 대졸 이상 학위를 요구하는 채용 공고의 비중은 41%로 2019년 46%보다 5% 포인트 감소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는 “이런 변화는 근로자에 대한 수요가 높고, 실업률이 낮아 발생한다”며 “구인 공고는 일자리를 찾는 실업자 수를 훨씬 능가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9월 미국의 실업자 수는 580만명이지만 구인 공고는 1070만개로 거의 배에 달했다.
대졸 학력 요건 삭제는 구글, 델타항공, IBM 등 대기업에도 확산하고 있다. IBM은 미국 내 일자리 대다수를 4년제 대학 졸업장 없이도 지원할 수 있게 개편했다. 델타항공도 4년제 대졸자를 선호하지만 올해 초부터 신규 채용 요건에 이를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 WSJ는 “기업들이 대신 기술과 경험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월마트의 경우 미국 내 매장관리자 75%가 시간제 일자리 경력을 쌓은 것으로 집계됐다. 캐슬린 매클로플린 월마트 부사장은 “우리는 현장 대부분 업무에 학위를 요구하지 않고 사무직에서도 점차 학위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며 “회사의 (채용) 목표는 (지원자) 학위보다 어떤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글은 미국에서만 10만명 이상이 디지털 마케팅과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등 분야에서 대학 교육을 대체할 수 있는 온라인 교육 수강을 마쳤다고 설명했다. 구글 외에도 150개 기업이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고 WSJ는 전했다.
직원 채용에 어려움을 겪던 메릴랜드주 정부도 대졸 지원 요건을 없앴다. 4년제 대졸자 이상만 뽑던 연봉 8만 달러의 행정직 공무원 채용 요건을 고졸 이상 학력과 3년 이상 경력 요건으로 바꾸기도 했다. 지난 5∼8월 채용된 주 공무원 가운데 대졸 미만 학력자는 전년 동기보다 41% 급증했다.
비영리단체 ‘일자리에서 기회를’ 브리짓 그레이 최고고객책임자는 “대학 학위가 없는 7000만명의 25세 이상 노동자 중 400만명이 고임금 직종에 종사한다”며 “대학은 분명히 신분 상승의 길이지만 유일한 길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