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벧전 1:24~25)
“다 괜찮다. 막내딸 보고 싶네. 내가 죽으면 올까.”
평소 표현이 없으신 아버지 말씀은 2011년 12월 내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타국에 살아 늘 불효녀의 심정인 게 사실이었다. 나는 이듬해 봄에 한국 방문 계획이 있던 터라 “아버지 내년에 갈게요”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아버지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다음 날 새벽 폐렴으로 혼수상태가 되었고 깨어나지 못한 채 본향으로 직행하셨다. 평소 강건했던 분이었고 가족의 죽음을 상상할 수 없었던 내게는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우리 집은 4대째 기독교 집안이다. 친가와 외가 친척도 목회자나 선교사들이 많다. 나의 형제 6남매 중 4남매도 직장을 다니다 이후 사역자로 헌신한 이들이다. 아버지는 열정이 넘쳤고 거침이 없었다. 순수하고 모든 일에 정직했다. 평생 교회를 위해 일하셨다. 장로로서 교회 건축과 선교에 자신의 삶을 진실하게 드리셨다.
아버지는 병원 입원 전 주일에 교회에서 대표기도를 하셨던 것 같다. 유품을 정리하던 중 아버지의 손때 묻은 성경책 안에서 손으로 직접 쓴 기도문을 발견했다. 기도문 내용은 마치 자신 삶의 마지막을 알고 있었던 듯, 지나왔던 인생에 대한 감사와 찬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버지가 기도문 속에 인용한 베드로전서 1장 24절 말씀은 줄달음쳐 살아왔던 내 삶에 제동을 거는 성구였다.
아버지의 천국 환송예배를 드리고 빈소의 구석에 앉았다. 이방 땅에서 지쳐 먼 방에 돌아와 벽에 기대어 우는 나를 아버지가 위로하며 손을 잡아주는 꿈을 꾸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육신을 빌린, 온전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손길이었다.
내가 사는 독일 베를린에는 도심 속 공동묘지(Friedhof)가 있다. 나는 ‘안식의 뜰’이라 불리는 이곳을 지치고 힘들 때면 찾아간다. 묘지 속에는 희로애락 속에 발버둥 치다 풀잎처럼 스러진 이들이 예외 없이 누워 있다. 무덤은 한 장의 풍경 사진처럼 고요하지만, 그들이 살았던 시간 동안 치열했을 것이다. 나 또한 이국 생활 내내 긴장하고 경계하며 살아왔다. 그때마다 아버지가 남긴 성구를 되뇌면 마음에 안식이 깃든다. 인생이 스러지는 들풀과 같다는 말은 자칫 허무주의처럼 느껴지지만, 이어지는 25절에서는 소망으로 종결된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영원하기에 우리는 오늘 희망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약력> △재독 작가 △저서 ‘베를린 오마주’ ‘나는 파독 간호사입니다’ ‘흔적’ 등 △희곡 ‘베를린에서 온 편지’ ‘칭창총 소나타 No.1’ ‘유리천국’ 등 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