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창 임불교회(이현용 목사)는 35년간 지역주민들과 동고동락해 온 작은 교회다. 특히 마을주민이 재배한 콩을 시가보다 비싸게 수매해 된장을 만들어 파는 교회로 유명했다. 2014년 3대 목사로 부임한 이현용(61) 목사도 곽유선(61) 사모와 함께 교회 전통을 고스란히 계승해 성도들과 질 좋은 재래식 된장을 만들고 그 수익금을 교회 운영비에 보태며 목회 소명을 이어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임불교회도 농어촌교회가 직면한 어려움을 피해갈 수 없었다. 바로 고령화의 질곡이다. 이 목사 부임 당시 성도 수는 40명이 넘었고 교회학교도 있었지만 지금은 90대 어르신 7~8명과 지적장애인 10여명만 남았다. 이 목사는 28일 “된장을 만드는 일은 손이 많이 가고 체력이 필요한 작업이라 나이 든 어르신이 하기엔 버겁다. 나도 10년 넘게 이 일을 하다 보니 몸 여러 군데가 고장이 났다”며 “몇 년 전에는 주민들의 콩을 수매할 정도의 돈이 없어서 된장 생산을 멈췄던 적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임불교회의 사정을 듣고 서울 강남구 수서교회(황명환 목사)가 손을 내밀었다. ‘자립대상교회 지원 프로젝트’에 임불교회를 선정하고 3년에 걸쳐 1억원을 지원한 것이다. 임불교회는 지난해 수서교회의 지원금으로 생산 시설을 기계화하면서 한결 수월하게 된장을 만들 수 있게 됐다.
된장을 만드는 데는 1년의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지난해 12월 임불교회 성도들과 인근 지역 목회자들이 교회에 모였다. 전날 깨끗이 씻어 24시간 이상 불려놓은 콩을 삶고 빻은 뒤 적당한 크기로 잘라 숙성실에 매달았다. 올해 2월 따뜻한 온돌에서 숙성된 메주를 물, 천일염과 함께 항아리에 채웠다. 두 달 후엔 간장을 분리하고 메주는 다시 큰 일교차 속에 긴 숙성을 거쳤다. 그 결과 영양이 듬뿍 담긴 햇된장이 이달 초 출하됐다.
이 목사는 “전에는 추운 겨울 교회 앞마당에 가마솥을 걸어놓고 손이 곱아가며 메주를 만들었는데 수서교회 지원금으로 콩 세척기, 콩을 삶는 증숙기, 메주 모양을 만드는 성형기 등을 구매했고 메주 숙성방을 증축했다”며 “그 덕에 따뜻한 곳에서 힘을 덜 들이고 된장을 만들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설비를 갖춘 후 처음 만든 된장과 간장은 지난 13일 수서교회가 개최한 ‘농수산물 직거래 장터’에서 판매됐다. 수서교회 성도들이 이 목사 부부가 가져온 된장 70박스와 간장 150병을 모두 팔아준 것이다. 한번 후원으로 끝내지 않고 자립기반을 마련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돕는 것이다.
수서교회는 농어촌교회를 위한 직거래장터를 15년째 여는 등 도서 산간에서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위한 사역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다음 달에는 임불교회에 이어 전남 순천 새샘물교회(선종천 목사)를 두 번째 자립지원 대상으로 정하고 협약식을 연다. 새샘물교회는 친환경 우렁이양식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황명환 목사는 “농어촌교회를 살리는 방법은 단지 후원금을 주는 게 아니라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농어촌교회가 꿈을 꾼다면 그것을 실현해 줄 형제교회가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며 “교회를 도울 수 있는 곳은 교회밖에 없다. 도시교회가 열심히 살아가는 농어촌교회에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임불교회는 다음 달 6일 형제교회의 든든한 버팀목을 생각하며 다시 된장 만들기에 돌입한다. 이 목사는 “교회에 가고 싶어 차 시간에 맞춰 집 앞에 나와 있고, 곱게 접은 헌금 몇천 원을 드리는 장애인 성도들이 내가 목회를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동력”이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이어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