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주제로 한 에세이집 ‘인생의 역사’가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48)의 책으로 국내외 유명 시 25편을 소개한다. 해설이나 비평이라기보다 시를 함께 읽어가며 그 의미를 발견하고 이를 인생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시키는 형식이다. 독자 리뷰를 보면 “다시 시를 읽고 싶어졌다”거나 “시가 멋져보인다” “시를 약간 알 거 같다” 같은 반응들이 많다. 시에 다가가지 못했던 사람들이 신형철을 통해 시와 만나고 있다.
젊은 시 선생
신형철은 서문에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고 썼다. 시의 고루한 이미지를 단번에 쇄신하는 강력한 문장이다. 지난 달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마주 앉은 ‘젊은 시 선생’ 신형철은 “시는 나도 어렵다”고 했다.
“석사, 박사를 다 시로 했지만 지금도 시가 제일 어렵다. 그런데 그 어려운 걸 해석해내는 성취감이 크다. 비평가 입장에서는 시 장르의 매력이 거기에 있다. 어렵지만 보람이 있다는 것.”
그는 또 “시는 가성비가 매우 떨어지는 예술”이라고 했다. 지독하게 어려운데, 그걸 힘겹게 읽는다고 해서 어떤 유익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시를 쓰고 읽는 것일까. 시를 휘감고 있는 아우라는 무엇이고.
“황지우 김수영 최승자 등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에게서 받았던 충격이 뭘까 생각해보면, 한 사람의 내면이 그냥 툭 떨어져 나온 것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다. 뭔가 펄떡펄떡 하는 감정을 토해내는 시들에 감동을 받은 것 같다. 실비아 플라스나 미국의 고백파 시인들도 그렇다. 어느 예술이 그 정도로 직접적이고 솔직하고 생생할 수 있을까. ‘인생의 육성’이란 표현을 쓰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시가 없어지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시가 없어지만 안 된다는 그 마음은 없어지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는 말도 했다. “우리의 언어는 효율적이고 공격적이고 실용적인 차원으로만 예민해지는 경향성이 있다. 더 비효율적이지만, 더 아름답게, 더 깊이있게, 문장을 공들여 적는 사람들이 시인들이다. 언어라는 중요한 매체를 조심스럽게 다루는 차원에서 시를 소중하게 여기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가 어렵다는 건 한 번 읽어서 이해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몇 번쯤 읽어야 시가 이해되는 것일까. 신형철은 “한 번 읽어도 되는 시가 있다. 즉각적으로 좋고 그걸로 끝나는 시. 한 번 읽었는데 잘 모르겠지만 뭔가가 있다고 느껴지는 시가 있다. 그런 경우엔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시를 출력해서 들고 다닌다든지, 책상 앞에 붙여놓기도 하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읽어보기도 한다. 자료도 찾아보고. 한 번 읽고 시를 이해하는 비법 같은 건 없다. 시는 압축의 장르니까 그렇다. 최대한 압축한 거니까 다의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누가 어떻게 끄집어내느냐에 따라 의미가 펼쳐지는 것이다. 부채나 아코디언처럼 조금씩 펼치면 점점 더 뭔가가 보인다.”
그는 시를 읽는 방법으로 ‘데리고 살기’를 권한다. “시는 데리고 살아야 되는 것 같다. 진득하니 반복해서 읽다보면 해석이 가능해진다. 최근 나온 진은영 시집은 잘 쓴 시집, 좋은 시집이고 좀 어려운 시집이다. 그런 시집이라면 1년 정도 가지고 다니면서 읽어봐도 좋겠다.”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 연작은 총 10편의 장시인데, 20세기에 쓰여진 시 중 가장 심오한 시로 꼽힌다. 신형철은 이 시를 평생을 두고 읽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지금까지 10년 넘게 읽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시를 읽는 데는 조금 다른 독서법이 요구되는 것이다. 데리고 살면서 읽는 것이고, 반복해서 읽어야 되고, 읽을 때마다 조금씩 더 읽히는 것이다. 그는 “시는 겪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렇게 읽어서 우리가 시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가장 아름답고 심오한 질문”이 거기에 있다고 말했다.
“누구도 시인들만큼 잘 묻기는 어렵다. 나는 그들로부터 질문하는 법을, 그 자세와 열도와 끈기를 배운다. 그것이 시를 읽는 한 가지 이유다. 인생은 질문하는 만큼만 살아지기 때문이다.”
정확한 문장가
신형철의 글은 내용에 앞서 문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2008년 첫 책이자 문학평론집인 ‘몰락의 에티카’에서부터 신형철은 문장가로 주목을 받았고, 이후 발표된 ‘느낌의 공동체’ ‘정확한 사랑의 실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그리고 이번 ‘인생의 역사’까지 네 권의 산문집에서 신형철 문장의 힘을 거듭 확인시켰다.
독자들은 신형철이 무엇에 대해 쓰건 그의 글을 읽기 위해서 책을 산다. 그게 책 얘기든, 영화 얘기든, 시 얘기든, 시사 칼럼이든 상관 없다. 문장에 대한 경탄이 그의 글을 읽게 한다. 그리고 그의 문장을 경탄하게 만드는 게 정확함이다.
그는 “정확한 문장이라는 평가는 기쁘다”면서 “늘 염두에 두고 도전하는, 변함없는 과제가 정확함이다. 한 편의 글에서 문장을 제대로 쓴 것 같다는 게 한두 개 있으면 기쁘다”고 했다. 그를 기쁘게 만드는 정확한 문장이란 어떤 것일까.
“막연하게 어딘가에 있는 인식, 한 번도 제대로 표현돼 본 적이 없는 인식, 그걸 탁 잡아서 이거야, 라고 말해주는 글이 정확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문장이 예쁘거나 중요해서가 아니라 언젠가 나도 생각한 적이 있지만 표현하는데 성공한 적이 없는 문장, 그래서 밑줄을 긋게 하는 문장, 그런 걸 쓰는 게 정확하게 쓰는 것이다.”
그는 “정확한 문장이 주는 쾌감은 나꿔채는 듯한 느낌”이라며 “그런 문장은 영감이나 그런 게 아니라 집요하게 포위해서 구석으로 몰아가지고 찾아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번 책의 서문 마지막 부분에는 올해 태어난 아들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신형철은 여기서 아들을 “인생은 불쌍한 것이지만 그래서 고귀한 것이라고 (못) 말하는 아주 작은 사람”이라고 썼다.
“아직 돌도 되지 않은 아기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아들’이라고 쓸까 했더니 딸하고는 다른 감정이 실리는 느낌이 있었다. 그런 젠더적 느낌이 싫었다. ‘아이’라고 할까 했더니 제가 이 아기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 다 안 실리는 느낌이었다. 보호받아야 하지만 존중도 받아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아주 작은 사람’이라고 썼다. 그리고 그 앞에 뭘 쓸까 하다가 애가 너무 열심히 기고 걸으려고 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어서 ‘아름다운’이라는 말을 썼다. 그런데 그 말이 걸려서 다시 ‘고귀한’으로 고쳤다. 그래서 ‘고귀한 것이라고 말하는 아주 작은 사람’이 되었는데, 사실 이 아기가 말을 하지는 못하지 않나. 내 귀에는 들리지만. 그래서 괄호를 열고 ‘못’ 자를 넣었다.”
신형철의 정확함은 날카롭지만 상처를 내진 않는다. 그의 정확함은 충돌이나 평가의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발견과 경탄에 복무할 뿐이다. 이에 대해 그는 “정확함과 날카로움이 겨냥하는 바가 애초에 다른 것 같다”면서 “내가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은 대상은 비명제적 지식들에 표현을 부여하고 싶은 차원에서의 정확함”이라고 설명했다.
“상대방은 틀렸다고 입증해야 되는 글쓰기, 그 순간만큼은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은 글쓰기, 공격하고 제압하고 헤게모니를 잡으려고 하는 글쓰기, 그런 글쓰기는 안 하고 싶다. 얻는 건 별로 없고 소모되고 훼손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 글이 가치를 발견하는 작업이 됐으면 좋겠다. 가치를 찾아내고 공유하고 그러면서 제 작업도 가치가 있기를 바란다.”
신형철은 8년간 근무했던 조선대 문예창작학과를 떠나 올 가을부터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비교문학 협동과정)에서 근무하고 있다. 다음 책은 문학평론집이 될 예정이다. 첫 평론집 이후 14년이 지났지만 두 번째 평론집을 내지 못했다. 5년 전부터 준비했다는데 “아직도 더 고쳐야 될 것 같고, 더 써야 될 거 같다, 그래서 계속 시간을 끌고 있다”면서 “앞으로 3년은 더 걸리겠다”고 말했다.
신형철의 정확하고 아름다운 글은 어쩌면 그런 몰입과 시간이 만들어내는 것인지 모른다. 고치고, 또 고치고, 읽고, 또 읽고, 그래서 우리가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생각과 감정이 정확하게 포착될 때까지 쓴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