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기독교의 눈으로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일은 소중하다. 2000년 역사의 서구 기독교와 견주어 140년 역사의 한국교회는 아직 신생이다. 세계 기독교의 다양한 얼굴과 역동적 재편 과정을 객관적 시각으로 담아내는 일은 물론 지적으로 방대하고 난해한 작업이다. 그렇지만 정체된 한국교회의 현재를 진단하고 나아갈 바를 모색하기 위해선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작업이다.
이재근(47) 광신대 신학과 역사신학 교수는 세계 기독교와 한국교회를 연결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학 세계기독교연구소장 브라이언 스탠리 교수를 사사한 그는 미국 남장로교의 세계 및 한국 선교 정책을 연구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 ‘세계 복음주의 지형도’를 펴낸 이 교수가 이번에는 20세기 세계 기독교를 만든 21명의 이야기 ‘20세기, 세계, 기독교’(복있는사람)를 출간했다. 지난 28일 청년신학아카데미 강의를 위해 상경한 그를 서울 서초구 양재 온누리교회에서 만났다.
책은 오늘날 세계 기독교의 키워드로 ‘복음주의’ ‘비서양’ ‘오순절’ ‘혼종’을 제시한다. 이 키워드에 맞춰 20세기 기독교를 대표하는 인물들을 분류했다. 복음주의에는 1940년대 이래 보수주의 개신교가 잃어버렸던 지성과 양심, 사회의식 회복을 외치며 등장한 칼 헨리, 위대한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 성공회 복음주의자 존 스토트와 제임스 패커, 20세기 미국 기독교를 상징하는 빌리 그레이엄 등을 다뤘다.
비서양은 일본의 가가와 도요히코, 인도의 VS 아자리아, 남미의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데즈먼드 투투 주교를 언급한다. 20세기 가장 역동적인 기독교 운동인 오순절에 관해서는 인도의 판디타 라마바이, 미국의 피터 와그너, 그리고 한국의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를 다룬다. 마지막 혼종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존 모트, 칼 바르트, 레슬리 뉴비긴, CS 루이스 등을 소개한다.
순서상 세 번째로 나오는 존 스토트(1921~2011) 목사 글에 대해 이 교수는 “사심이 묻어났다”고 말했다. 존경과 애정이 담긴 디테일을 글에 숨길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스토트 목사는 마틴 로이드 존스와 함께 20세기 영어권 최고 설교자, 빌리 그레이엄과 함께 로잔대회를 주도해 20세기 세계 복음주의의 확산을 이끈 지도자, 제임스 패커와 더불어 20세기 가장 많이 판매된 기독교 베스트셀러를 쓴 저자, 칼 헨리와 함께 20세기 복음주의를 고립된 게토에서 공적 영역으로 끌어올린 인도자 등으로 회자된다.
그러나 이 교수는 스토트 목사의 일상에도 주목한다. 평생 독신으로 영국 런던 올소울즈교회 근처 작고 소박한 아파트에 살면서 단벌 양복과 단벌 구두만으로 만족한 인물, 가난한 제3세계 유학생과 나그네에게 늘 손수 자신의 주식이던 햄버거와 수프를 대접하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기도한 인물, 아마추어 조류학자로 새를 관찰하는 탐조 여행을 좋아했는데, 1993년 한국을 방문해 비무장지대를 탐방할 당시 ‘새에 너무 미쳐있는 것 아닙니까’란 질문을 받고 “저는 예수님이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고 하신 명령을 지키고 있습니다”라고 답한 일화까지 들려준다. 세계 복음주의자들이 모이는 제4차 로잔대회가 2024년 한국에서 열림에 따라 로잔언약을 입안한 스토트 목사의 온화한 통합력과 지도력이 더욱 절실해진 요즘이다.
이 교수는 한국인 가운데 유일하게 조용기 목사를 언급했다. 그는 조 목사에 대해 “20세기 기독교의 특징인 비서양과 오순절, 두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밝혔다. 한국기독교역사학회 회장직도 맡고 있는 이 교수는 “세계 기독교를 복음주의와 인물 중심으로 살펴본 두 권의 책에 이어 향후 한국적 맥락에서 기독교를 대표한 한국 사람들 이야기를 저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