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에게 빛을, 자녀에겐 믿음을… 영육을 살리는 ‘아낌없는 사랑’ 남기고…

생전의 박은주(가운데) 권사가 2006년 서울 서초구 사랑의교회에서 세 명의 딸, 손자 박민서군과 함께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랑의장기기증본부 제공


빈소에 놓인 박은주 권사의 성경책. 김희정씨 제공


향년 8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고 박은주 권사. 그는 아낌없이 주고 간 사람으로 기억될 만하다.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 박진탁 목사)는 지난 9일 고인의 사망 직후 2명의 시각장애인에게 각막을, 경희대 의과대학에 시신을 기증했다고 30일 밝혔다.

생전의 박 권사는 2006년 출석 교회였던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에서 열린 생명나눔 캠페인을 통해 처음 장기기증을 결심했다. 특히 박 권사를 비롯해 3명의 딸과 손자까지 3대가 모두 장기기증 등록에 동참했다. 차녀인 김희정(53)씨는 이미 1999년 사후 각막기증에 서약했다. 박 권사의 손자인 박민서(22)씨는 당시 6세라는 어린 나이에 등록했다.

박 권사의 차녀 김씨는 “어머니는 생전 자녀들에게 ‘기독교인에게 중요한 것은 영혼이지, 육신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강조했다”며 “평생 성경통독과 이웃사랑에 힘쓰셨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박 권사는 지난해 2월 황달 증상이 나타나 병원을 찾았다. 췌장암 말기였다. 2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나서도 그는 손에서 성경을 놓지 않았다. 2011년에는 뇌종양 수술도 했다. 김씨는 “뇌종양 수술 이후 시력에 이상이 생겼는데도 매달 성경을 1독 하셨다”면서 “믿음과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하셨던 분”이라고 말했다. 그가 자녀들에게 유일하게 물려준 것도 ‘신앙의 유산’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고인은 1년 넘게 병마와 싸우면서 단 한 번의 항암치료도 받지 않았다. 기적같이 통증도 없었다.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투여받은 진통제가 전부였다. 그러면서 세상을 떠날 때에는 아낌없는 나눔까지 실천했다.

장기기증본부에 따르면 사후 각막기증자는 6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지난해 159명으로 2016년(293명)에 비해 54.3%로 거의 반토막 수준이다. 연간 사망자(2021년 기준)가 31만7680명인 것에 비하면 0.05%에 불과하다.

김씨는 교회 내 장기기증이 활성화되면 좋겠다고 했다. “아직 기독교인 사이에서도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이 마냥 긍적적이지 않은 것 같아요. 내 몸에 집중하면 (기증이) 무섭지만, 내 신체 일부가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내 각막으로 누군가가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유경진 기자 yk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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