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시장에서도 통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일은 기업뿐 아니라 대학에도 미래 생사를 가름할 중요한 과제다. 경북 포항에 있는 재학생 4000여명의 작지만 알찬 한동대학교가 '글로벌 대학'을 표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2월 취임한 최도성(70) 총장이 그간 학교 운영에서 보인 교육철학도 단순히 취업 시장에 강한 인재를 길러내는 일에만 있지 않았다.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사에서 만난 최 총장에게서 학생들이 한 손엔 복음을, 한 손엔 기독교 세계관 바탕의 지식을 들고 세상에 나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길 바라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최 총장은 서울대 경영대 교수와 한국증권연구원장,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등을 역임한 금융·자본시장 전문가다. 이론과 정책, 실무에 두루 해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교회는 시무장로로서 온누리교회(이재훈 목사)를 섬긴다. 최 총장은 인터뷰 내내 부드러운 말투로 답변을 풀어내면서도 그 내면에 깃든 올곧은 신앙심과 확고한 교육철학을 드러냈다. 그런 최 총장에게서 한동대가 배출할 '외유내강'형 인재들의 미래 역시 가늠해볼 수 있었다. 취임 당시 기독교대학으로서의 건학이념을 바탕으로 과감한 부흥과 혁신을 통해 글로벌 리더를 키워내는 일에 매진하겠다고 밝힌 최 총장의 포부는 현재진행형이다.
-올해 중점적으로 추진한 과업은 무엇인가. 한동대만의 강점을 소개한다면.
“제2의 창학이라 할 만큼 ‘진짜 기독교대학’ ‘글로벌 대학’ ‘학생 우선 대학’. 이 세 가지 핵심 가치 신장에 집중하려 했다. 기독교대학 정체성은 그저 그런 또 하나의 대학이 되지 않도록 한동대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경쟁력이다. 이미 많은 졸업생이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해외 90여개국 150여개 도시로 나가 각 분야에서 한동대의 정신을 이어가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2040년까지 해외 출신 학생이 절반이 넘도록 만들어 진정한 ‘글로벌 캠퍼스’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학생 우선 대학은 교내 모든 프로그램을 학생에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될 때만 시도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일종의 ‘한동대사명위원회’를 만들어 전 교직원이 21세기형 교과과정 로드맵을 만들고 있다. 학생 중심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모듈형 교과과정’이 대표적이다. 각 학과 교수진이 구축한 전공 교과목을 학생 스스로 유연하게 모듈처럼 조합해 자신에게 맞는 전공을 설계하는 제도다. 이는 전공 간 장벽을 허물고 융합의 접점을 넓혀줘 학생들이 각 사회 현장에 더 잘 녹아들 수 있게 해주리라 기대된다.
요즘 학생들에게 ‘스타트업 기업’은 주요 이슈다. 학생들이 스타트업 기업 문화를 몸에 익히도록 실습 위주의 커리큘럼(교과과정)을 갖추려 한다. 졸업 전까지 돈 버는 것 너머의 것을 추구하며 사람과 환경, 사회를 살리는 기업을 만들어보고 실습해볼 수 있게 지원하려 한다. 학생 때는 실패도 경험이자 훈장 아닌가. 실패조차 칭찬해주는 문화를 만들어주려 한다.”
-기독교 가치관에 따라 설립된 한동대가 세계화 시대 우리 사회에 어떤 방향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보는가.
“세계화 시대에 필요한 ‘글로벌 시민’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사람, 자신의 믿음과 삶이 일치하는 사람, 남을 배려하며 협동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 그런 학생을 키우려 한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환경을 이겨내고 사회를 선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상급교육기관으로서 대학교의 존재 목적과 한동대가 추구하는 복음 전파, 기독교 가치관의 전수가 요즘 시대에 때론 상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긍정적인 면을 본다. 지금도 학교 현장에서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고, 이 기독교 세계관은 학생들 속으로 스며들어 각자의 방식대로 소화되고 있다. 일례로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단순히 생산, 투자, 소비 활동의 관계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배움이 하나님 지으신 세계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모색하게 하는 것이다. 세상을 기독교 세계관으로 똑바로 보며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노력하는 사회인으로 길러내려 한다.”
-요즘 학생들의 가치관에 자리 잡은 주된 기조는 어떤가. 다음세대가 지녔으면 하는 가치관이 있다면.
“자기중심 사고가 팽배하다. ‘하나님보다 내가 먼저다’라고 생각하는 학생도 종종 본다. 한동대는 80%의 학생이 생활관에서 공동체 생활을 한다. 인성 교육의 하나다. 그동안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았을 학생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며 이 세상에는 같이 더불어 사는 이가 있다는 걸 알고, 남을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공동체 정신을 배울 수 있으리라 본다.
학년과 무관하게 30여명의 학생들이 한 명의 교수가 구성한 팀 아래 모여 함께 성경을 읽고 토론하고, 특별 강의를 듣는 모임도 있다. 전공과 학년 차이에서 벗어나 다양한 이들과 어울리며 다른 전공에 대한 지식과 타인에 대한 이해도 높아지는 과정이다.
각박해진 세상과 취업 시장에서의 좌절로 힘들어할 학생들에게 먼 미래를 긴 안목으로 바라봤으면 한다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으로 재직할 때였다. 경제 보는 눈을 높이고자 경제 현상을 세 개의 눈높이에서 보는 훈련법을 홀로 세우고 연습했다. 땅에서 보는 ‘그라운드뷰’ ‘3000피트 상공에서 보는 뷰’ ‘3만 피트에서 보는 뷰’다. 그리운드뷰에서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똑바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고, 3000피트 높이에서는 어디로 빠져나가야 할지가 보인다. 3만 피트에서는 10~20년 뒤 마땅히 가야 할 길을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다. 이처럼 학생들에게 현재의 어려움에 주눅 들지 말고, 자기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왜 하나님이 이 땅에 날 부르셨을지를 찾으라’고 격려해주고 싶다. 학교 다니는 동안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재능)를 찾고, 하나님과 그 달란트를 어떻게 사용할지 끊임없이 대화해봤으면 한다.”
-교육 철학은 무언가.
“그동안 학생들에게 무엇을 봐야 할지 또 어떻게 사고해야 할지를 가르치려 했다. 지식의 축적과 소멸이 빠른 시대 속에서 단순히 지식 습득이나 취직에 급급하기보다는 주위의 힘든 이들을 살피며, 점점 화합이 어려워지는 이 세상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봤으면 한다. 세상엔 마실 물이 없어 전염병 걸리는 이들, 배움의 기회조차 없이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어린이들도 많다. 학생들의 눈이 그런 곳을 향하길 바란다. 그런 안목을 갖게 하는 일이 교수의 역할이라 본다. 앞선 사회 문제를 해결할, 건전하게 사고할 능력을 길러내는 역할도 필요하다. 종종 ‘배워서 남 주자’고 강조하는 이유다. 자신이 배운 것을 소외된 이들에게 전해주며 그들을 이끌고 밀어줄 능력을 학생들이 가졌으면 한다.”
-지난 삶에서 만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나. 학생들에게 학창시절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으라고 조언하고 싶은지.
“외할아버지께서 목사님이셔서 모태신앙이다. 어느 날엔가는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마음이 힘들어 기도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일이다’는 마음을 주셨다. 능력은 하나님이 주시리라 믿고, 그저 하나님 뜻에 순종하며 나를 보내시라고 답하면 된다는 걸 깨달았다.
40대 초반까지만 해도 믿음과 공부는 별개라고 생각했다. 주일만 빠짐없이 교회에 나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강의할 때도 소명의식 없이 그저 월급 받고 일하는 곳이라고만 생각했던 적도 있다. 지금 와서 보니 신앙과 삶이 분리되지 않고 일치했다면 더 삶이 윤택해지고, 보람찼겠지 싶다.
18년간 미국에서 살다 서울대 교수로 오면서부터 성경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이 시작됐다. 학생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점차 내가 있는 곳이 하나님께서 파송한 선교지라 생각하게 됐다. 한동대 다른 교수님들도 이 같은 소명의식이 저마다 있으시리라 본다. 그런 점이 다른 대학교의 교육과 구별되는 점이 아닐까.”
-한동대의 내년도 중점 추진 과제와 비전은
“앞서 말한 모듈형 교과과정 개편 작업의 중요한 해로 삼으려 한다. 내년 6월에는 ‘기독교 대학에서의 가르침’이란 주제로 ‘INCHE 아태지역 컨퍼런스’를 열어 미국 대학들과 함께 성경의 진리를 대학 교육, 연구, 사회참여의 각 부문에 효과적으로 연결할 방안을 논의하려 한다.
스타트업 문화를 배양하고자 2023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ESG(환경·사회·투명경영) 창업센터 ‘제네시스 랩’도 만들려 한다. 단순 이익창출을 넘어 지속 가능한 ESG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해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고 가치를 창출할 것이다. 한동대가 가진 글로벌 네트워크, 교육과정 등의 이점과 지자체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사람과 환경, 세상을 살리는 ESG 스타트업 허브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