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3장을 보면 마노아와 아내가 믿음의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마노아는 수태고지를 들은 아내의 말을 들은 뒤 자신도 듣고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는 영적 암흑기인 사사 시대에도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할 정도의 믿음이 있던 사람이었고 응답에 대한 확신도 있었습니다. 이들이 살던 시대가 영적 암흑기였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블레셋에게 넘겨 징계하던 때였다는 걸 생각해볼 때 우리는 결코 마노아의 믿음을 폄훼할 수 없습니다.
본문 22~23절에서 이들 부부의 믿음에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마노아는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22절)라고 두려워하고, 아내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23절)라고 말합니다.
마노아는 그가 알고 있는바 죄인으로서 하나님을 봤으니 죽게 됐다고 두려워하고, 아내는 된 일과 약속된 일을 보고 죽지 않을 것이라 말한 것이죠. 마노아의 두려움은 믿음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한계는 오늘날 적잖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해당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삶 속의 실재가 되지 못해서입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성경 말씀에 대한 지식이 자신의 삶을 지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신앙생활에 대한 연역적 접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에서 하나님과 성경 말씀에 대한 바른 지식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바른 지식이라도 삶의 현장에서 실재가 되지 못한다면 마노아 같은 한계를 벗어나기 힘듭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도 이 한계에 갇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를 생각하지도 않고 그걸 지키느라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행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기까지.
한편 마노아의 아내는 같은 사건을 경험했지만 지혜로운 믿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죽이려고 하셨다면 그들의 번제를 받지도 않으셨을 것이고 여호와의 사자를 반복적으로 보내 확증하지도 않으셨을 것이며 장차 부부에게 나실인 아들이 태어날 것도, 또 그 아들이 이스라엘을 블레셋으로부터 구원할 것도 미리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일로 죽이지 않을 것을 확신한 것이죠.
마노아의 아내는 어떤 면에서 자기 남편과 다른 믿음을 갖게 된 것일까요. 그녀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삶 속에서 이미 이루신 일들과 약속하신 일들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이적을 보여주심으로써 약속하신 일들이 반드시 이뤄질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삶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살폈더니 하나님의 목적이 보이고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실 것을 믿게 됐습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 대한 귀납적 접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노아의 아내로부터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 가운데 이미 이루신 일들이 무엇인지 살피고 내게 약속하신 일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봅시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이루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를 구원하고 살리셨으니 그 일을 이루시기까지 나를 지키시고 인도하실 것을 신뢰합시다.
하나님과 성경 말씀에 대한 바른 지식으로부터 신앙생활의 현장까지 이어지는 연역적인 접근과 함께 내 삶에 이뤄진 일들로부터 하나님의 손길과 목표를 발견하는 귀납적인 접근 역시 등한시하지 맙시다. 그래서 우리 신앙이 현실에 깊게 뿌리 내린 신앙이 돼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드러나고 하나님께 영광되며, 우리에게는 복 된 인생을 살아갑시다.
한승진 목사(광주 오치애양교회)
◇광주광역시 북구에 있는 오치애양교회는 성경 말씀을 통해 성도로서 자생력을 갖추고, 복음의 생명력으로 교회와 가정, 직장, 지역사회, 온 세상을 생동하게 하려고 힘쓰는 교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