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이 2022년 카타르 월드컵으로 들썩이고 있다. 10일부터 시작되는 8강전에는 세계 축구 강호들의 경기가 기대감을 높인다. 비록 한국은 8강 진출이 좌절됐지만, 새벽 비가 오는 영하의 날씨에도 광화문에서 월드컵을 응원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면서 축구장을 누볐던 젊은 날의 뜨거움이 떠올랐다.
나의 축구 사랑은 여고생이었던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시작됐다. 한국 선수 최연소 기록을 세우며 월드컵에 출전한 이동국(당시 19세) 선수의 외모에 반해 생일부터 키 몸무게 포지션 기록을 줄줄 외고 다닐 정도였다. 처음엔 이동국 선수가 좋았을 뿐 축구가 재밌진 않았다. 하지만 경기장을 찾는 횟수가 늘며 점점 축구의 매력에 빠졌다. 대학 졸업 후에는 프리미어리그를 직접 관람하고 싶어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영어 수업을 마치면 친구들과 펍(Pub)에 모여 축구 시합을 시청하거나 경기장 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결혼 후 사모가 된 뒤부터 축구에 대한 열정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남편은 ‘축알못’(축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소통과 공감이 잘 안 됐을뿐더러 직장인으로, 아내로, 교회 공동체를 돌보고 챙기는 사모로 살다 보니 바빠졌기 때문이다.
다시 축구에 관심을 두게 된 건 지난해 6월부터 SBS에서 방영된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이란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부터다. ‘골때녀’는 여자 연예인으로 이뤄진 9개의 축구팀에 전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감독을 맡아 우승컵을 놓고 리그전을 펼치는 예능프로그램이다.
매주 ‘골때녀’를 시청한 이유는 출연자들의 축구를 향한 열정과 진정성 때문이었다. 하이힐 대신 축구화를 신고 민낯에 운동복을 입고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하는 모습, 때론 몸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고 실력보다 열정만 앞서기도 하지만 부상 중에도 몸을 아끼지 않는 열정과 투혼으로 팀을 위해 뛰는 축구를 향한 그녀들의 열정은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골때녀’의 인기는 여자축구 활성화의 시작을 알렸다. 직장인 여성들뿐 아니라 “축구를 직접 배워보고 싶다”는 사모들도 늘고 있다. 이미경(36·헤브론축구선교회) 사모는 지난해 ‘골 때리는 엄마들’ 클럽팀을 창단했다. 엄마들이 함께 모여 운동하는 이 클럽에는 3명의 사모가 활동 중이다.
이 사모는 “처음에 공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랐지만 이제는 공과 꽤 친해졌다”면서 “남편, 자녀들과 축구로 소통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지면서 가정도 더 화목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기독교축구선교연합회에도 사모들의 축구 모임이 결성됐다. 작은 인원이지만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 축구공 하나로 사모들은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축구 기술도 전술도 아직은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공을 차는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즐거움이 넘친다.
지역사회의 여자 축구 클럽을 직접 찾아가 등록한 사모도 있다. 개척교회 3년 차의 한 후배 사모는 “교회 공동체가 아닌 축구 클럽에서 종교가 다른 이들과도 축구로 소통하고 하나가 되는 경험이 즐겁다”며 “이곳에선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고 축구도 배우고 복음도 전할 수 있어 기쁨이 두 배”라고 말했다.
사모들의 축구 열정이 기쁘다. 늘 말과 행동에 제약이 따르는 사모들이 축구장에서 함께 땀 흘리고 공을 차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면 좋겠다. 무엇보다 축구라는 공통분모로 각 지역과 클럽에 사모로 구성된 축구팀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래서 전국 사모 축구 클럽 리그전을 치러보면 어떨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축구의 힘은 실로 놀랍다. 고작 400g 남짓한 축구공이 지구촌 사람들을 웃고 울리고, 여성과 사모들까지 푸른 경기장으로 끌어냈으니 말이다. 조만간 나도 축구화 한 켤레를 장만해 봐야겠다. 이제는 ‘축알못’ 남편이 아니어도 함께 축구 이야기를 꽃피울 수 있는 사모들이 있으니 말이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