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내리는 커피] 브라질 이탈리아, 커피와 축구선수 교환



월드컵 축구가 한창이다. 영국에서 축구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반이었다. 1908년 런던올림픽에서 공식 경기로 처음 채택됐다. 1920년 올림픽부터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국가 간 축구 경기가 됐고, 첫 대회에서는 벨기에가 우승했다. 1924년 대회부터는 프로선수들도 참여하는 제대로 된 국가 간 경기였다. 우승팀은 우루과이였고, 1928년 대회에서도 우루과이가 우승했다.

첫 월드컵은 1930년 열렸고, 개최지는 올림픽 2회 우승국 우루과이였다. 첫 대회에서 우루과이는 아르헨티나를 물리치고 우승했다. 1934년과 1938년 월드컵에 우루과이는 불참했고, 2차 세계대전으로 1942년과 1946년 월드컵은 열리지 못했다. 1950년 재개된 월드컵에서 우루과이가 주최국 브라질을 이기고 다시 우승을 차지했다. 우리나라가 이런 역사를 지닌 나라들과 예선과 16강 경기를 치렀다.

브라질은 축구의 나라이기 이전부터 커피의 나라였다. 1900년대 초반 세계 커피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1929년 갑자기 시작된 대공황으로 커피 거래 가격이 무너졌다. 낮은 가격에도 커피를 찾는 나라가 없었고, 브라질의 충격은 컸다. 브라질 정부는 커피 심는 것을 금지하고 수백만 자루의 커피를 불태웠지만 커피 가격 하락을 막을 수 없었다. 모든 방법이 동원됐다. 커피로 벽돌을 만들고, 커피를 철도용 연료로 사용했다. 커피로 기름, 가스, 와인, 플라스틱을 제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10년 이상 커피 가격은 회복되지 않았다. 1937년 한 해에만 브라질에서 1720만 자루, 1억3000만㎏ 이상의 커피가 불태워졌다. 전 세계 커피 1년 소비량의 3분의 2를 태운 것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브라질 사람들은 축구를 즐겼다. 시즌이 끝나면 선수 트레이드도 활발했다. 1938년 월드컵에서 3등을 했던 브라질이 우승국 이탈리아의 유명 축구선수와 자국 선수를 트레이드하고자 했다. 그런데 자국 선수가 더 우수하다고 생각한 이탈리아가 브라질 선수와 맞교환은 어렵다고 주장했고, 브라질 선수 한 명에 커피를 일정량 얹어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 축구선수에 커피를 끼워 파는 1+1 계약이 그렇게 성사됐다. 커피를 사랑하는 이탈리아는 축구선수와 함께 커피를 받았고, 축구를 좋아하던 브라질은 커피를 보내고 축구선수를 얻었다. 이런 투자와 열정 덕분에 브라질은 1958년 월드컵에서 첫 우승을 했고, 현재 다섯 번 우승을 차지한 유일한 국가가 됐다.

이런 소식은 식민지 조선의 매일신보 1939년 6월 6일자, 동아일보 6월 7일자에도 실렸다. 제목이 ‘축구선수와 커피를 교환’이었고, 기사 마무리는 ‘커피와 축구선수 빠-터제 성립’이었다. 이 기사를 읽은 조선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을지 궁금하다. 우울함이 넘치던 식민지 시대에도 해외토픽은 흥미로웠다. 브라질과의 16강전에서 전반전은 지고, 후반전은 이겼으니 결국 비긴 것이라는 열혈 축구팬들의 아전인수격 해석이 SNS를 달궜다. 해외토픽으로 외국에 전해져 웃음을 자아냈을 만하다.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교육학과) leegs@aks.ac.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