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의 전당’ 국회가 멈췄습니다. 민생은 안중에도 없고 당리당략에 휘둘려 싸우는 국회의원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피곤합니다. 결국 정기국회 기간 안에 내년도 국정 살림살이에 쓸 예산안 처리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예산안 협상의 새로운 시한이 오는 15일로 며칠 연장됐지만 여야 간 현안이 상충하면서 데드라인 전 협상이 성사될지는 미지수입니다.
허구한 날 싸우는 여야 국회의원들이 최근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지난 9일 오전 국회 본관 B107호에서였습니다. 이날 여야 국회의원들은 모처럼 화합과 상생을 이루자고 다짐했습니다. 구심점은 최근 보수 공사를 마친 ‘국회 기도실’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국회 기도실 재개관 감사예배가 진행됐습니다. 개신교는 1980년 가톨릭과 불교보다 앞서 국회 본관에 처음으로 기도실을 마련했습니다.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기도실은 긴 세월이 지나며 시설이 낡아 사용하는 데 여러 불편이 있었다고 합니다.
기도실을 보수해야 한다는 의견은 김진표 국회의장이 냈습니다. 지난 7월 21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이 된 뒤 기도실 개보수를 제안한 것이죠. 주요 교회들이 국회의장의 의견에 곧바로 응답했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새에덴교회, 사랑의교회, 수원중앙침례교회가 보수를 위한 헌금을 냈고 기독 국회의원과 국회 신우회 회원들도 정성을 보탰습니다.
보수 공사를 마친 뒤 흰색 톤으로 마감된 기도실은 화사한 느낌을 줍니다. 100여개의 좌석이 마련된 기도실 전면에는 십자가가 있고 뒷벽에는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회 때 국회의원 이윤영 목사가 낭독했던 기도문이 액자에 담겨 걸려 있죠.
예배에 참석한 국회의원들은 하나같이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약속했습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축사에서 “국회가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다”면서 “국민 다수가 원하는 대화와 타협의 성숙한 정치가 되도록 이 자리에서 국회의원들이 기도하며 노력하겠다”고 전했습니다. 이채익 국회조찬기도회 회장도 “기도실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이 국가를 위해 함께 기도하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예배에 참석했던 20여명의 여야 국회의원들도 “아멘”으로 화답하며 기도를 통한 대화와 타협에 동의했습니다.
이날 국회의원들의 다짐이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주고받았던 인사치레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화와 타협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막 11:17)”. 화합의 장이 돼야 할 기도의 집이 ‘강도의 소굴’이 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