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씨앗 뿌린 희생앞에 걸음을 멈추다 [우성규 기자의 걷기 묵상]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은퇴교수가 최근 서울 마포구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서 묘비를 가리키고 있다. 묘비 가운데 구멍들은 6·25전쟁 당시 총탄의 흔적이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겨울의 걷기 묵상, 이번엔 꽃을 들고 걷는 길이다. 서울 지하철 합정역 7번 출구로 나와 꽃집에 들러 하얀 국화 한 다발을 준비한다. 2호선 전동열차가 지상으로 나오는 터널을 따라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코너에 ‘양화진 책방’이 나타난다. 기독출판 홍성사가 독자들과 만나는 공간이다.

책방 1층에서 양화진을 다룬 책 세 권을 집어 든다. 소설가 정연희의 ‘양화진’, 서울 YMCA 총무를 역임한 오리 전택부 선생의 ‘양화진 선교사 열전’,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은퇴교수의 ‘한국교회 처음이야기’. 모두 홍성사가 발간한 책이다. 이 책들을 미리 읽고 길을 나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책방을 나서면 곧바로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이다. 묘원 입구에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교회가 있다. 100주년기념교회 성도들이 주중에는 선교사들의 묘비를 닦고 방문객의 해설을 돕는 등 봉사하고 있다. 한국교회사의 대가 이덕주 교수의 해설로 최근 선교사 묘원을 돌아봤다. 기독출판사 사자와어린양의 이현주 대표가 첫 책 발행 1주년을 맞아 독자들과 함께 나선 걷기 여행을 이 교수가 이끌었다.

“두 개의 언덕을 돌아볼 예정입니다. 양화진 묘원과 절두산 성지입니다. 죽음을 기억하는 장소들입니다. 아름답고 거룩하기까지 한 죽음, 그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사람들이 꽃을 들고 찾아옵니다. 잘 사는 것뿐만 아니라 잘 죽는 것도 중요합니다. 오늘 선교사 묘원에서 어떤 분에게 꽃을 내려놓을지 생각하면서 발걸음을 옮기면 좋겠습니다.”

병자들의 친구 헤론, 한국 선교의 시작점 언더우드, 항일 언론 투사 베델,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고 새긴 헐버트 박사의 묘를 지났다. 이 교수는 “‘헐버트 박사의 묘’ 글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남성보다 여성 선교사들의 묘비 앞에 더 자주 멈춰 섰다. 남편을 따라 머나먼 조선 땅에 왔으나 3년 만에 남편을 먼저 천국으로 떠나보내고 여성 목회자 양성에 힘쓰며 성광모자원을 설립해 미망인과 자녀들을 도운 안나 채핀 선교사와 역시 여성 계몽에 힘쓴 그의 여동생 블란체 베어 선교사. 미국 의료인 상위 1%의 안락한 삶을 버리고 미망인 엄마가 독자인 의사 아들을 설득해 한국에 온 모자(母子) 선교사 메리 스크랜턴과 윌리엄 스크랜턴. 여성 의사 로제타 홀 선교사와 함께 한국에 온 간호사 엘라 루이스 선교사. 홀 부인의 아들로 한국에서 태어나 아버지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의사, 그중에서도 결핵 전문의가 되어 크리스마스씰을 남긴 셔우드 홀 선교사. 아들 홀 선교사는 역시 의사인 부인과 함께 해방 후엔 한국보다 더 열악한 인도에 가서 30년 사역을 이어갔다. 부모님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과 함께 죽은 뒤 양화진으로 돌아온다.

선교사 묘원을 뒤로하고 이웃한 천주교의 절두산 성지를 걸었다. 개신교에 딱 100년 앞선 1784년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인 최초로 세례를 받은 평신도 이승훈의 자그마한 동상을 지나자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순교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프랑스 군함이 양화진까지 진출해 무력시위를 벌인 대가로 벌어진 참혹한 복수극. 이를 두고 이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선교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콜럼버스가 말했습니다. 첫째는 힘에 의한 선교(Mission by Force)로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제국주의 선교 방식을 가리킵니다. 가톨릭이 19세기 말까지 선교를 주도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사랑에 의한 선교(Mission by Love)입니다. 섬기고 희생하면서 남긴 복음의 씨앗을 말합니다. 이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땅 사람들의 마음을 얻습니다. 양화진 언덕의 선교사들이 미션 바이 러브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