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당뇨 합병증으로 인한
말기 콩팥병 증가 속도 세계 1위
고령화·비만 증가로 당뇨병 급증
콩팥, 한 번 손상 땐 회복 어려워
국가 차원 당뇨 치료·관리 필요
말기 콩팥병 증가 속도 세계 1위
고령화·비만 증가로 당뇨병 급증
콩팥, 한 번 손상 땐 회복 어려워
국가 차원 당뇨 치료·관리 필요
한국이 당뇨 합병증으로 인해 투석 치료나 콩팥 이식을 받는 ‘말기 콩팥병’ 발생 증가 속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학계 진단이 나왔다. 고령화와 비만의 증가로 당뇨병이 급증하고 그에 따른 만성 콩팥병 환자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지난해 말기 콩팥병 치료 환자의 절반 가까이가 당뇨병이 원인이었다.
콩팥은 체내에서 노폐물 제거, 수분·전해질·혈압 조절, 뼈와 적혈구 생성 등의 중요한 기능을 한다. 이런 기능이 절반 이상 손상돼 3개월 넘게 지속되면 만성 콩팥병으로 진단된다. 노폐물을 걸러내는 사구체여과율(GFR)을 기준으로 5개 단계(G1~G5)로 구분되는데, 콩팥 기능이 완전히 망가져 투석(혈액·복막) 등 신대체요법이 요구되는 단계는 마지막 G5에 해당한다. 만성 콩팥병 4단계부터는 신대체요법을 미리 준비해야 입원 기간이나 사망률을 줄일 수 있다고 보고돼 있다.
콩팥은 한 번 손상되면 정상 기능 회복이 어렵다. 말기 콩팥병은 과거 ‘말기 신부전’으로 불렸으나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요즘은 ‘말기 신장병’과 혼용되고 있다.
말기 콩팥병 증가 “재난 수준”
대한신장학회 임춘수(서울시보라매병원 교수) 이사장은 19일 “콩팥을 다루는 의사들은 말기 콩팥병의 증가세가 가파른 현재 상황을 재난 혹은 위기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1985년 시작된 환자 등록사업 데이터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말기 콩팥병 치료 환자는 1만9286명(혈액투석 83.6%, 콩팥 이식 11.4%, 복막투석 5.1%)으로 2000년(4000여명)에 비해 5배 가까이, 2010년(9500여명)보다는 배 이상 증가했다. 지금까지 유병자는 12만7000여명에 달한다.
임 이사장은 “말기 콩팥병 환자가 해마다 500명씩 새로 추가되고 있다. 이런 추세가 10년, 20년 지속되면 한국이 전 세계에서 말기 콩팥병 유병률 1위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당뇨병 인구의 급증과 합병증 예방 등 국가 관리시스템의 미흡이 콩팥에서의 재난적 상황을 초래했다는 게 학계 설명이다.
임 이사장은 “당뇨병은 초기부터 관리하지 않으면 콩팥은 물론 심혈관, 눈, 발·다리 등에 다양한 합병증을 유발한다”며 “특히 말기 콩팥병으로 진행돼 투석을 받게 될 경우 1년에 3조원이 들어가는 등 사회경제적 비용 부담이 엄청나고 환자 자신과 가족들이 겪는 고통 또한 매우 크다”고 덧붙였다.
콩팥 손상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당뇨병과 고혈압, 사구체신염, 이상지질혈증, 고(高)요산혈증, 비만, 단백질 섭취 정도, 흡연, 선천성 유전질환 등이 있다. 이 중 당뇨병이 가장 큰 위협이다. 학회 조사에 따르면 2021년 말기 콩팥병의 원인 질환은 당뇨병이 47%로 가장 높았고 고혈압(21%) 원인미상(13.4%) 사구체신염(9.8%) 기타질환(7.1%) 물혹성 신질환(1.6%) 순이었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92년에 사구체신염, 원인미상에 이어 원인 3위였던 당뇨병은 1994년 1위로 올라선 뒤 27년째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비율이 50%를 넘은 적도 몇 차례 있다. 반면 고혈압 원인 비율은 정체 수준이며 사구체신염이나 원인미상, 물혹성 신질환 등 다른 요인은 감소하거나 유지 추세다.
학회 진료지침이사인 정성진 가톨릭의대 여의도성모병원 교수는 “당뇨병과 고혈압이 말기 콩팥병 원인의 70% 가까이 차지하는데, 고혈압은 당뇨보다 관리가 용이한 측면이 있다. 1990년대말 콩팥 보호 효과가 좋은 고혈압약이 나온 것도 영향을 줬다. 반면 당뇨병은 약물치료뿐 아니라 식이·운동 등 전반적인 관리가 보다 복잡하고 환자 교육도 미흡하다”고 설명했다.
2013~2019년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보면 2019년 당뇨 유병 인구와 치료받은 환자의 혈당 조절률은 각각 26%와 25.5%로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치료받은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조절률에서 별 차이 없다. 2013~2015년(각각 23%, 22.3%), 2016~2018년(각각 28.3%, 25.8%)과 비교해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정 교수는 “당뇨 유병자와 치료자의 조절률에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은 현재 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있음을 의미한다”며 “당뇨병은 규칙적인 약물치료도 중요하지만 생활습관 등 자기 관리가 중요한데, 치료 이외 상담이나 교육 등 다양한 방식의 관리 기제가 부족한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코로나 3년, 당뇨관리 여파 우려
전 세계적으로도 당뇨병 원인의 말기 콩팥병 발생 비율은 1위인 홍콩(52.4%) 다음으로 한국이 높았다. 또 2010~2020년 당뇨병성 말기 콩팥병의 연간 평균 증가율은 한국이 인구 100만명 당 9.7명으로 싱가포르(8.4명) 카타르(8.2명) 타이완(5.8명) 등 비교적 높은 국가들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정 교수는 “당뇨병에 의한 콩팥 합병증이 최근의 말기 콩팥병 발생의 상승을 이끌었다는 해석이 맞는다”면서 “게다가 코로나 유행 3년간 보건소 등의 만성질환 관리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했는데, 이 여파가 조만간 콩팥 등의 합병증 급증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시점에 당뇨병 환자 증가세를 잡을 국가 차원의 치료·관리책이 없으면 콩팥에 미치는 ‘도미노 쓰나미’는 불가피할 것이란 게 학계의 예상이다.
대한당뇨병학회 최근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30세 이상 국내 당뇨병 환자는 605만명이고 당뇨 전단계(1500만명) 까지 포함하면 전 국민의 40% 이상이 당뇨병이거나 고위험군이다. 또 만성 콩팥병을 앓는 30세 이상은 10%를 훨씬 웃돌고 60세 이상 고령층에선 더 흔하다(2020년 기준).
이에 신장학회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재난 수준으로 늘고 있는 당뇨성 만성 콩팥병에 대해 2033년까지 관리할 목표를 제시하는 ‘콩팥건강 이니셔티브(kidney health initiative)’를 내년 4월쯤 발표할 계획이다. 또 당뇨병학회, 개원의사회와 협력해 인식 개선을 위한 대국민 캠페인을 펼치고 보건당국과 국회에 국가적 관리 프로그램 마련을 촉구할 예정이다.
임 이사장은 “당뇨병과 당뇨성 콩팥병 발생의 날개를 지금 꺾지 않으면 안 된다. 당뇨 초기부터 콩팥 기능이 유지되도록 하고 투석 치료 기간을 10년 늦추며 주기적으로 합병증을 점검하는 국가관리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