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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지역사회의 긴밀한 협력, 줄었던 마을 인구도 늘었다

경남 남해군 상주초 5학년 학생들이 마을에서 위험한 곳을 조사한 뒤 학교 도서관 ‘책별당’에 학생들을 모아놓고 설명하고 있다. 상주초등학교 제공


충북 괴산군 송면초 학생들이 마을 탐방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부러진 나무를 활용해 ‘숲속 아지트’를 만들고 있다. 송면초등학교 제공


“선생님, 우리가 해보고 싶어요.”

경남 남해군 상주면에 있는 상주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이 배성철 담임교사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시작은 이 학교 교장의 “학교 주변 위험요소에 대해 철저히 지도해 달라”는 지시였다. 배 교사가 5학년 학생들에게 조심할 장소들을 직접 발굴·정리해보자고 제안했고, 아이들이 흔쾌히 수락한 것이다. 지난 5월의 일이다.

전교생 60명 학교의 5학년생 8명과 교사 한 명이 시작한 이 작은 움직임은 이후 남해 군수가 직접 나서는 꽤 ‘굵직한’ 프로젝트로 발전한다.

학교시설 복합화라면 교육 당국과 지역이 수영장, 도서관 등을 공동으로 만들어 학생과 주민이 공유하는 걸 연상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 그린스마트스쿨 사업의 한 축인 복합화 시설을 연결 고리로 학교와 지역사회가 협력하는 모델도 물론 중요하다. 다만 핵심은 시설이 아니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협력해 아이들을 키우고 이를 통해 교육 여건과 정주 여건도 함께 좋아지는 ‘윈-윈 전략’이 중요하다. 학교와 마을이 협력해 학교·지역 소멸에 대응 중인 두 학교를 찾아갔다.

학교가 그리고 지자체가 바꾼다

상주초 5학년 아이들은 ‘상주마을 지킴이 안전지도’를 제작하기로 하고 지난 5~6월 따가운 햇볕 아래 동네 곳곳을 누볐다. 배 교사는 교육과정을 재구성해 아이들 교육에 활용했다. 실과 시간의 ‘학교 안전사고 예방’, 체육의 ‘성폭력 알고 대처하기’, 미술의 ‘다양한 재료와 방법으로 표현하기’와 토론 수업을 엮었다. 아이들은 현장조사를 통해 안전 분야를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토론에 참여했다. 지도를 그리는 일은 미술 수업의 연장선이었다.

5학년 눈높이에서 보니 어른들이 간과했던 지점들이 발견됐다. 아이들은 정보를 정리하고 시각화한 뒤 지도로 만들었다. 지도는 손수건에 새겨 다른 학생들에게 나눠주기로 했다. 지난달 29일 남해군에도 민원을 넣었다. 답변은 하루 만에 왔다. 군수가 아이들과 직접 대화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발표 자료를 만들어 브리핑했다.

아이들이 지목한 곳은 안전해지는 중이다. 학생들이 자주 다니는 농로에 가로등이 없는 길이 있었다. 밤에 논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가로등은 농작물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 농민 동의가 필요했다. 아이들은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센서형 가로등, 야광 테이프, 바닥에 설치하는 조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배 교사는 “아이들이 부쩍 컸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학교와 하나로마트 사이의 국도는 난제였다. 아이들은 ‘마트 갈 때 자주 걷는데 인도가 없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국도는 지방자치단체 소관이 아니었다. 군은 일단 차선규제봉을 설치한 뒤 국도 관리 당국과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군 관계자는 “내년 중 인도가 설치될 것”이라고 했다.

상주초는 학부모의 협력을 매개로 지역사회와 풍성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인근 상주 은모래비치를 활용한 생태교육이나 작은 학교에서 가능한 ‘방 탈출 게임’ ‘학교 캠핑’ 등 프로그램이 있다. 주민과 학생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복합화 시설 ‘책별당’(도서관)에서는 다양한 강좌가 진행된다. 대도시에서 경험하기 힘든 교육·보육 프로그램은 학부모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2020년 20~30명으로 줄어들던 학생 수가 현재 60명으로 늘었다. 3분의 2가량이 창원 등 큰 도시에서 왔다.

교사가 수업, 학부모&지역은 실습

충북 괴산군 송면리 송면초등학교도 대도시에서는 따라하기 어려운 이 학교만의 특색 있는 교육을 하고 있다. 학부모와 지역사회의 협력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학교 정규 교육과정과 방과후 학교, 돌봄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형태란 점이 특징이다. 교사가 운영하는 학교가 한 축, 학부모가 관리하는 ‘자람터’가 또 다른 축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학부모들이 초가을 무렵 6주간 매주 월요일 마을 탐험의 일환으로 운동장 캠핑을 한다. 텐트를 치고 밥도 지어 먹는다. 이렇게 캠핑에 익숙해진 아이들 가운데 5, 6학년생을 데리고 교사들이 2박3일 코스로 캠핑을 떠난다. 이 과정에서 역사 수업과 체육 수업이 진행된다.

학부모들이 별자리 관측가를 초빙해 함께 별을 관찰하고 교사들은 이를 과학 시간에 수업 소재로 활용한다.

방과후 프로그램은 매일 바뀐다. 월요일은 마을 탐방, 수요일은 목공, 목요일은 ‘계절 살이’(계절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겨울에는 눈썰매나 스케이트, 여름에는 보트를 탄다)를 하는 식이다. 현재 송면초 학생들은 마을탐방 시간을 활용해 ‘숲속 아지트’를 만드는 중이다.

송면초는 인구 유입의 창구 역할도 한다. 괴산군 전체 인구는 줄고 있지만 송면초가 있는 송면리는 2017년 이후 꾸준히 외부에서 사람이 들어온다. 학생이 늘어나기 때문인데 2017년 36명에서 올해 57명으로 증가했다. 21명이 서울과 청주 등 도시에서 왔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최근 발표한 ‘우리나라 소규모학교 특성 변화와 추이 분석’ 보고서를 보면 ‘소규모화 고위험(1단계)’으로 분류된 학교는 전국 1657곳이다. 전체 학교의 26% 수준이다. 경북·전북·전남·충북·충남 5곳의 경우 고위험으로 분류된 학교가 40%에 달했다.

보고서는 “중앙정부 중심의 대응은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며 “지역사회와 연계한 소규모학교 지원 체제로 전환이 효과적이고 특히 지역교육지원청, 기초지자체의 역할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일보·한국교육개발원 공동 기획>

남해·괴산=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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