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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떠나려는 글로벌 소부장 기업들… “한국에 기회”







네덜란드 반도체 노광장비 전문기업 ‘ASML’은 지난 10월 내부공지에서 미국 영주권자를 포함한 미국인 직원에게 별도 공지를 할 때까지 중국 내 고객에게 직·간접적 서비스를 자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 ‘KLA’와 칩 제조도구 제공업체 ‘램 리서치’도 비슷한 시기에 중국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에 파견했던 미국인 엔지니어 등의 직원들을 철수시켰다.

중국에 사업장을 둔 글로벌 ‘소부장 기업’(소재·부품·장비기업)들의 ‘탈중국’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봉쇄 경험과 그에 따른 인건비 상승, 미·중 패권경쟁 심화가 촉발한 공급망 불안이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글로벌 소부장 기업들은 중국의 대안으로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에 주목한다. 전문가들은 한국에도 큰 기회라고 진단한다. 다만 이들 기업이 선호하는 대체후보지 요건을 일본도 지니고 있어 한국과 일본의 치열한 유치전이 펼쳐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5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오준석 숙명여대 교수팀에게 의뢰해 내놓은 ‘글로벌 소부장업체 국내 투자유치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내 글로벌 기업의 ‘탈중국 추세’는 최근 10년 내 가장 높다.

주중 EU상공회의소에서 올해 4월 중국에 자리한 유럽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재 진행 중이거나 계획된 투자를 중국 외 국가로 이전하는 걸 고려 중인 기업의 비중이 23%에 이르렀다. 이 비중은 지난해 조사에선 9%에 그쳤다.

상하이에 있는 미국상공회의소가 지난 7~8월 중국 내 미국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응답기업의 3분의 1은 중국에서 계획했던 투자를 이미 다른 국가로 돌렸다고 답했다. 전년 대비 2배 늘어난 수치다. 보고서는 중국의 봉쇄정책, 미·중 경쟁 심화로 촉발된 공급망 불확실성에 대한 피로감이 극에 달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소부장 기업들은 대안으로 동남아시아에 주목한다. 중국을 떠나더라도 거대 시장인 중국을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려는 아세안 국가들 행보와 맞물려 공급망 전반에서 ‘아세안 시프트’가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아세안 지역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공급망 생태계 측면에서 매력이 떨어진다. 이에 따라 한국과 일본이 떠오른다.

오준석 숙명여대 교수는 “한국과 일본은 업스트림은 물론 새롭게 시장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발달해 있다. 시장 데이터를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는 다운스트림 분야에도 강점이 있기 때문에 중국 공략이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 교수는 글로벌 소부장 기업의 유치를 놓고 한국과 일본의 경합이 심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한·일 모두 별도의 소부장 정책을 통해 자국 기업을 육성·지원하고 있지만, 글로벌 기업 유치를 위한 정책은 미비하다”면서 “일본보다 한 발 앞서 파격적인 투자유치 지원책을 내놓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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