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03년 8월이었다. 외국인 선교사들이 원산에 모여 기도회와 성경공부 모임(사경회)을 열었는데 그중 최고참이던 한 선교사가 설교자로 나섰다. 한데 이 남자는 설교 도중 뜬금없이 자신의 죄를 일일이 열거하기 시작했다. 백인이라는 우월감에 젖어 조선인을 대했고 캐나다 최고 의과대학 출신이라는 오만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으며 심지어 선교비를 유용했다는 잘못까지 낱낱이 털어놓았다. 그즈음 이 선교사가 작성한 선교보고에도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나는 지난 수년간 조선 교인들이 죄를 깨닫고 회개한 믿음의 확증을 열매로 보여주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나의 행위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회심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결국 진심이 한가득 담긴 그의 회개는 한국교회사에 선명한 무늬를 남기게 된다. 회개의 불길은 들불처럼 번졌고, 이 일은 그해 시작된 원산부흥운동의 신호탄이 됐다. 4년 뒤 평양 장대현교회를 중심으로 시작된 평양대부흥운동의 도화선 역할을 한 것도 이 선교사의 ‘영적 각성’이었다.
회개의 진정한 의미와 그 힘을 알려준 주인공은 캐나다 출신인 로버트 하디(1865~1949·사진) 선교사다. 지금도 그의 이름 앞엔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아버지’라는 수식어가 붙곤 한다.
2023년은 하디 선교사의 영적 각성이 있은 지 120주년이 되는 해로, 한국교회 곳곳에서는 그의 유산을 되새기는 다양한 활동이 1년 내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작은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가 벌이는 특별새벽기도회다. 26일 기감에 따르면 기도회는 다음 달 1~7일 전국 감리교회에서 일제히 열린다.
기감은 기도회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다채로운 내용의 설교문도 올려놓았다. 이철 감독회장은 설교문에 실린 인사말을 통해 “120년이 주는 종교적 의미는 ‘반복’ ‘재생’ ‘부활’ 등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하디 선교사의 영적 각성의 유산을 회복해 세상을 바꾸는 감리교회로 우뚝 서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하디의 영적 각성 1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는 사실상 올해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가령 기감은 하디기념사업회를 조직한 뒤 지난 8월 서울 감리교신학대에서 학술대회를 개최했고, 비슷한 시기 이덕주 전 감신대 교수는 평전 ‘영의 사람 로버트 하디’(밀알북스)를 내놓기도 했었다.
하디기념사업회장인 최이우(종교교회 원로) 목사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하디 선교사의 영적 각성은 회개의 역사가 부흥의 역사로 이어진 대표적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를 빼놓고 한국교회의 역사를 설명할 순 없다”면서 “한국교회는 하디 선교사가 남긴 영적 각성의 유산을 잘 이어받아 새로운 회개의 역사,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길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