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선교사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건 1885년부터입니다. 초창기 선교사들은 교파 간 경쟁을 지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에 선교사를 파송했던 미국남·북장로교회, 캐나다장로교회, 호주장로교회 4개 장로교회만 봐도 연합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889년 미국 북장로교회와 호주장로교회는 ‘하나의 한국교회’를 만들기 위해 ‘장로교선교부연합공의회’를 조직했습니다.
연합의 불씨는 1905년 재한복음주의선교회통합공의회로 이어졌으며 1918년에 이르러서는 우리나라에서 사역하던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와 여기에 속한 교회들이 ‘조선예수교 장감연합협의회’를 조직했습니다. 장감협의회는 말 그대로 교파가 다른 선교사와 교회들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한다는 사명을 함께 감당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장감협의회는 6년 뒤 더욱 큰 연합 조직으로 발전했죠. 1924년 9월 24일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가 출범한 것입니다. 창립총회에서는 ①협동하야(협동하여) 복음을 선전함 ②협동하여 사회 도덕의 향상을 도모함 ③협동하여 기독교 문화를 보급케 함 등의 규칙을 제정했습니다.
불행히도 교단은 달라도 사역은 함께하려던 한국교회의 전통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장로교단만 200개 이상으로 분열한 현주소가 초라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죠. 한국교회는 신사참배와 신학의 노선 등을 이유로 쉬지 않고 분열했고 나중에는 몇몇 개인의 욕심만으로 교단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초창기 연합하려던 정신을 잊은 셈이죠.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교회에서는 한국교회의 뿌리를 반추하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설립 40주년을 기념하는 감사예배였습니다. 연구소는 1982년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의 내한 100주년을 앞두고 ‘분열된 한국교회’가 함께 공유하고 있던 하나의 역사를 제대로 정리해 보자는 공감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연대는 한국사 속의 한 부류로 취급되던 교회사를 하나의 독립된 연구 분야로 성장시키는 동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 기독교사 연구를 위해 신진 학자들이 양성됐고 하나의 역사에 대한 연대 의식이 생겨났습니다. 이후 연구소는 한국교회사 통사를 다룬 서적을 비롯해 논문집과 인물·번역·연구·자료총서 등 116권 넘는 연구 서적을 발표하면서 한국 교회사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역사는 우리가 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며 미래로 향하는 길잡이 역할을 합니다. 137년 동안 분열의 아픈 역사를 써내려 오고 있지만 그 출발에는 한데 연합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고 잊지 않아야 합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편 133:1)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