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래구 한 골목에 빨간 가방을 든 부부가 떴다. 거침없이 문을 열고 들어간 식당에서 주인이 이들을 반긴다. “아이고, 예향교회 목사님 오셨네!” 부부는 가방에서 전도지와 함께 작은 과자를 꺼내 내민다. “사장님, 잘 지내셨죠. 교회 한번 나오세요.” “예예, 가긴 가야 하는데…. 매번 맛있는 거 받기만 해서 어쩌나.”
빨간 가방 부부의 정체는 예향교회 하경락(55) 목사와 김봉정(52) 사모. 인근 상점을 방문하며 전도 중이다. 교회에서 전도를 나왔다고 하면 눈살부터 찌푸리는 이들이 많은데 상점 주인들은 눈웃음으로 하 목사 부부를 맞는다. 하 목사 부부가 이렇게 지역을 돌아다니며 관계를 맺은 지 벌써 1년이 됐기 때문이다. 부부는 지난해 1월 1일부터 단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노방전도에 나섰다.
지난 27일에도 하 목사 부부는 과일가게, 금은방, 카센터, 분식점, 고물상 등을 돌며 전도지를 나누고 상인들을 축복했다. 아무도 부부를 내치는 사람이 없었다. 김 사모는 “초창기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모습”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내쫓긴 적이 많았죠. 들어가도 쳐다보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전도지를 던지면서 소리지르는 사람도 있었고요. 그럴 땐 상점 문 한 번 열기가 얼마나 겁이 났다고요. 그래도 ‘하나님이 사장님을 너무 사랑하시나 봐요, 또 가라고 하시네요’라고 하면서 매번 찾아갔어요. 그랬더니 지금은 다들 인사도 해주시고 사는 얘기도 먼저 꺼내주시고 해요.”
1시간 가까이 상점을 돌고 난 부부는 상가 3층에 있는 교회로 돌아왔다. 작은 교회 안에는 3000여권이나 되는 책이 들어차 있었다. 한쪽에는 ‘나도 한다, 오케스트라’ 현판이 붙어 있었고 또 다른 방 안에는 슬라임 퍼즐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하 목사가 쑥스러운 미소를 띠며 설명했다. “전도가 되겠다 싶은 건 닥치는 대로 다 시도해본 거예요. 어린이 도서관, 음악 공부, 놀이 카페…. 근데 잘 안 됐죠. 도서관은 시작하자마자 코로나19가 와서 제대로 아이들을 받아보지도 못한 상황이에요.”
2016년 교회를 개척한 하 목사 부부는 코로나 전까지 10여명의 성도와 함께 예배를 드렸다. 코로나를 거치며 성도들이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자 노방전도를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폭우가 쏟아져도 몸이 아파도 전도는 이어졌다. 휴가도 여행도 포기했다. 김 사모는 어린이집에서 일하던 것도 그만뒀다. 당장 가계 수입은 줄어들었지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복음을 직접 전하는 기쁨을 누렸다.
“하루는 남편과 서울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하고 내려오는데 길이 너무 막히는 거예요. 저녁도 못 먹고 내려왔는데 부산에 도착하니 밤 11시30분이었어요. 부리나케 전도지를 들고 버스 차고지로 달려갔어요. 아직 퇴근하지 않은 버스기사님들에게 전도지를 나눠주고 돌아왔죠.”(김 사모)
“주변에서 유난 떤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꼭 그렇게 해야만 전도냐, 적당히 해라’ 하는 시선도 있었고요. 미자립교회 목회자를 위한 수련회 같은 것도 전혀 가지 못했죠. 하지만 제가 하나님과 한 약속이었고,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으니 계속했어요. 한 영혼을 향한 열망이 컸던 것 같아요.”(하 목사)
슬럼프가 왔던 때도 있었다. 김 사모는 꼭 교회에 오겠다고 했던 이들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 이렇게 열심을 냈는데도 성도 수에 변화가 없었을 때 좌절을 경험했다고 했다. 그때마다 하 목사는 “전도는 내가 하는 것이지만 결과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3년은 목표로 해보자”고 사모를 격려했다. 하 목사는 “우리 교회를 향한 후원이 끊어지지 않았고 전도 물품이 부족하지 않았고 월세가 밀린 적이 없었다”며 “하나님이 이 일을 기뻐하시고 계속해야 한다는 사인을 주시는 것이라 믿고 있다”고 말했다.
하 목사 부부는 최근 붕어빵 기계를 마련했다. 올해부턴 붕어빵을 매개로 다시 전도에 나선다. “지난 1년을 돌아보니 전도를 잘 마치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은 우리지만 거두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앞으로 만날 또 다른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올해도 거리로 담대히 나가겠습니다.”
부산=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