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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두 교황과 두 대통령



2019년 개봉한 넷플릭스 영화 ‘두 교황’은 그제 선종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과 그 뒤를 이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영화의 주제는 하늘 아래 두 교황이 공존할 수 있는가로 모인다. 2013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살아생전 퇴임이 무려 6세기만에 생긴 일인 데다 베네딕토와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수파와 진보파로 색깔이 확실히 구분되기 때문이다. 배우 앤서니 홉킨스와 조너선 프라이스의 실감나는 연기가 실제의 두 교황과 매우 닮았던 것도 화제가 됐다. 영화에서 두 교황은 바티칸에서 며칠간 함께 지낸다. 교회에 대한 생각부터 음악 취향까지 모든 게 다르지만 끝없는 논쟁과 대화 끝에 차츰 마음을 열고 절충점을 찾는 거로 결말이 난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 세계엔 두 태양이 떠 있는 듯했다. 베네딕토 16세의 행동은 퇴임 후 사색과 학술 연구를 하며 세상에서 숨어지내겠다고 한 맹세와는 거리가 있었다. 본명인 요제프 라칭거 대신 교황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고 교황의 상징인 흰색 의복을 고집했다. 사제의 성추행 등 민감한 사안에 개입하고 기혼 남성의 사제 서품 가능성에 반대하고 나서는 등 프란치스코 의견에 맞서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그의 행동이 보수파를 대변하기 위한 건지, 세상에서 잊힐 걸 우려한 건지는 종교학계 연구과제다. 전문가들은 그간 명예 교황의 역할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 31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SNS에 연하장을 공개해 구설에 올랐다. “이태원 참사의 아픔과 책임지지 않고 보듬어주지 못하는 못난 모습들이 마음까지 춥게 합니다”라며 윤석열정부를 겨냥한 문구 때문이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잊혀진 삶을 살겠다던 문 전 대통령이 완전히 잊힌 존재가 될까 봐 불안한 모양”이라며 “퇴임후 보낸 연하장에도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못된 습관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논평했다. 우리도 전직 대통령의 역할에 대해 모종의 규정이라도 만들 때가 된 건 아닌지 벽두부터 씁쓸하다.

이동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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