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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8년 만에 생전 사임… 세속주의 맞섰던 정통교리 수호자

Benedict XVI 1927∼2022. AP연합뉴스


AFP연합뉴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2022년의 마지막 날인 지난 31일(현지시간) 95세로 선종했다. 그의 선종으로 ‘명예교황(Pope Emeritus)’과 현 교황이 공존하는 ‘두 교황’이라는 기묘한 상황도 막을 내렸다.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이날 “명예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오전 9시34분 바티칸에서 선종했음을 애도와 함께 전한다”고 발표했다.

교황청은 신자들이 마지막 경의를 표할 수 있도록 2일부터 베네딕토 16세의 시신을 성 베드로 대성전에 공개 안치한다. 장례 미사는 오는 5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주례한다. 미사를 마친 뒤 베네딕토 16세의 관은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묘지로 운구돼 안장된다.

공개된 유언에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믿음 안에 굳건히 서라”고 말했다. 이어 “인생의 늦은 시기에 내가 살아온 수십 년을 되돌아보면 감사해야 할 이유가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된다”며 “어둡고 지치는 이 길이 나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다는 걸 이해한다”고 말했다. 또 “어떤 식으로든 내가 잘못한 모든 사람에게 온 마음을 다해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 유언은 교황 즉위 1년 뒤인 2006년 2페이지 분량으로 작성된 것이다.

독일 출신인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78세의 최고령으로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교황직에 올랐다. ‘정통 교리의 수호자’로서 세속주의에 맞서 가톨릭의 전통과 교리를 지키는 데 집중했다는 평가다. 동성애를 ‘본질적인 도덕적 악’으로 규정하는 등 강고한 보수적 발언과 행보를 보여 전임자와 비교해 대중적 인기가 적었다. 가톨릭교회의 전통을 중시하며 다양한 시도를 했으나 그 과정에서 많은 반발을 낳으며 오히려 입지가 좁아졌다. 게다가 건강 문제는 늘 그의 발목을 잡았다. 교황 즉위 전 심장발작을 두 차례 겪었고, 고혈압과 퇴행성 관절염을 앓았다. 결국 즉위 8년 만인 2013년 2월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교황의 자진 사임은 가톨릭 역사상 598년 만의 일로 전 세계 교계에 큰 충격이었다.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직을 내려놓고 스스로 명예교황이라 칭하며 후임 교황에게 무조건 순명하겠다고 언약했으나 종교 문제에 대해 계속 목소리를 내며 가톨릭 내부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이에 ‘두 교황’ 체제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미국 보수 가톨릭계에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선종은 ‘영웅의 상실’과 같다고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평가했다. NYT는 “그의 선종은 미국 가톨릭 보수파에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새로운 지도자가 된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던 ‘그림자 존재’이자 비공식적 지도자의 상실을 의미한다”고 했다.

베네딕토 16세의 선종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임도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전임 교황 2명이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 후임자가 부담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러한 우려가 없어져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건강을 이유로 사임 의사를 밝혀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명예교황 두 명에 현역 교황까지 교황이 셋이나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진보를,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보수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후임자에게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했다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박재현 백재연 기자 j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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