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이종이식 임상시험 국내서 시작
세포 옮겨심기, 비교적 간단한 방법
난치병 극복 시대 본격 열릴지 주목
세포 옮겨심기, 비교적 간단한 방법
난치병 극복 시대 본격 열릴지 주목
새해에는 사상 처음으로 동물의 췌도를 가진 한국인이 탄생할 전망이다. 중증의 1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첫 이종(異種)이식 임상시험이 국내에서 첫 발을 뗀다. 최근 규제당국으로부터 임상시험 승인을 받은 바이오기업과 대학병원 공동 연구팀이 이달부터 환자 모집 절차에 들어가고, 선정된 첫 환자에게 이르면 10월쯤 무균돼지의 췌도를 이식할 계획이다.
췌도는 혈당조절 호르몬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내 조직(세포덩어리)이다. 1형 당뇨는 췌도가 완전히 망가져 인슐린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인슐린 투여로도 혈당 조절이 어려운 환자들에게 췌도이식은 근본적 치료법으로 기대를 모은다.
특히 동물 심장이나 콩팥 간 폐 등 고형 장기를 옮겨심는 것과 달리, 췌도이식은 세포를 이식하는 비교적 간단한 방법으로 환자 부담이나 위험이 적기 때문에 상용화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전 세계 이종이식 연구에서 췌도 분야는 한국이 선도하는 상황이다. 성공 여부에 따라 낡고 병든 인간의 조직이나 장기를 동물의 것으로 대체해 난치병을 극복하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릴지, 부족한 장기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까다로운 승인 심사 통과
이번 임상시험은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이종이식학회(IXA) 등 국제기관의 프로토콜과 안전성 기준을 지키는 최초의 사람 대상 이종 췌도이식이다. 앞서 뉴질랜드(2009년) 아르헨티나(2011년) 중국(2013~2017년)에서도 임상시험이 시도됐지만 자국 규제기관의 승인을 획득했을 뿐 WHO와 IXA 가이드라인 준수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이종이식 전문기업 제넨바이오는 2021년 8월 임상시험을 신청했으나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까다로운 심사 요건에 보완자료를 제출하는 데 시간이 걸려 지난해 12월에야 최종 허가를 받았다. 식약처는 이종이식에 쓰이는 원료 동물의 원균(병원체)제어시설 리스트 68종에 대한 검사법 확립 등을 추가로 요구했다. 특히 췌도이식을 통해 돼지에 내재된 바이러스(PCMV PLHV PCV 등 146개)가 사람에게 검출되지 않음을 입증하는 자료를 제출토록 했다. 식약처는 이종이식 제제(조직·장기)의 품질관리 기준 및 안전성 지침을 마련하는 등 국내 첫 이종이식에 대비해 왔다.
제넨바이오는 가천대 길병원과 함께 임상시험을 수행하며 서울대의대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 소속이었던 연구진들이 협업한다. 췌장을 공여할 무균돼지는 서울대의대가 제공한다. 이곳은 이종이식용 무균돼지 50여마리를 사육중이며 이 중 췌도이식에 쓰일 8마리에 대한 집중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서울대의대 미생물학교실 박정규 교수는 2일 “이곳 무균돼지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람에게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미생물이 없다는 걸 공신력있는 기관으로부터 확인받았다”고 말했다.
이달 중 1형당뇨 대상 환자 모집
무균돼지는 제넨바이오의 GMP(의약품 등 품질·제조관리 기준)시설로 옮겨져 췌도 분리와 정제, 품질검사, 무균상태 재확인, 포장이 이뤄진다. 실제 환자로의 이식은 가천대 길병원이 맡는다. 임상시험 책임자인 김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이달 중 식약처 허가 서류 등을 제출해 병원내 임상연구심의위원회(IRB)를 통과하면 바로 환자 모집 절차를 시작할 것”이라며 “의학적 기준 등 단계별로 철저한 심사를 거쳐 9월까지 임상시험 승인 대상 2명을 포함한 환자풀 5~6명을 선정하고 첫 환자 이식은 10월쯤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상시험 대상인 첫 번째, 두 번째 환자 이식 결과에 따라 나머지 환자들의 후속 임상연구도 순차적으로 이어갈 예정이다. 다만 2명 외 환자 대상 임상시험은 식약처 승인을 추가로 받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게 임상 대상 환자의 선별이다. 만 19세 이상으로 1형 당뇨를 진단받고 유병기간 5년을 넘어야 하며 포도당을 먹는 등 인슐린 자극 검사에도 분비 능력이 0.3ng/㎖ 이하인 환자가 대상이다. 또 ‘저혈당 무감지증’으로 인한 혼수상태나 쇼크에 빠져 1년에 2차례 이상 입원하거나 응급실을 방문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저혈당과 고혈당이 반복되는 등 혈당 변동성이 커도 대상이 된다. 국내 1형 당뇨 환자 3만여명 중 저혈당 무감지증을 겪을 정도의 심각한 이들은 약 5%(1500여명)로 추정된다. 김 교수는 “선별 과정에 6개월간의 충분한 숙려기간을 갖고 그 사이 연속혈당 측정, 인슐린 치료 등을 통해 적절한 이식 대상인지 여부를 판별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혈당조절 능력 1~2개월 내 판가름
췌도는 췌장의 1% 정도를 구성하는데, 췌장에서 간단히 분리해 수혜자의 간혈관(간문맥)에 주입만 하면 된다. 이식된 돼지의 췌도가 간조직에 생착하는 데는 1주일 정도 걸리고 혈당조절 능력 여부는 1~2개월 내 판가름난다. 김 교수는 “저혈당 빈도가 이식 전 하루 5번에서 1번으로 줄고, 지속 시간이 한 번 1시간에서 10분으로 감소했다면 100% 성공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안전성 여부까지 파악하려면 6개월은 지켜봐야 한다. 면역거부반응이나 돼지 내재 바이러스의 종간 전파 등 위험요소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돼지 세포 표면에서 발현되는 당단백질(알파갈)은 초급성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다만 췌도의 경우 장기가 아닌 세포인 만큼 이식에 따른 초급성면역반응 유발 가능성은 낮다는게 전문가 의견이다. 김 교수는 “급성면역거부반응은 단기간에 결판나지만 우리가 모르는 잠복된 돼지 바이러스가 옮겨올 가능성에 대한 막연한 우려는 있다. 그래서 이식 후 2년 이상 추적관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상시험 단계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지만 바이오기업 옵티팜과 국립축산과학원도 이종이식 조직 및 장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옵티팜의 경우 유전자 편집을 통해 초급성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알파갈을 제거한 다중형질전환돼지 다수를 확보하고 조만간 이들 돼지의 췌도를 원숭이에 이식하는 비임상시험을 준비 중이다. 옵티팜은 췌도 외에 이식용 돼지 신장과 간 개발도 진행 중이다. 축산과학원은 면역거부반응 없는 형질전환돼지의 각막을 영장류에 이식해 성과를 거뒀으며 심장, 콩팥으로까지 연구를 확대하고 있다.
박정규 교수는 “이번 무균돼지 활용 췌도이식 임상시험의 주 목적은 안전성 확인”이라며 “이어 국책연구과제를 통해 돼지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반대로 사람 유전자를 돼지에게 집어넣어 면역거부반응을 줄이고 이식 효율성을 높이는 연구를 지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