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셋을 끼고 화면에 나타난 성경말씀을 읽는 김국희(77) 권사의 윗입술이 떨렸다. 입이 말라 떨린 거라며 애써 태연한 듯 말하지만 표정엔 긴장감이 역력했다. 그런 김 권사의 모습을 아들 김병희(46) 목사가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지난 4일 김 권사는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보이셀라’가 있는 서울 강남구 스튜디오에서 한 시간가량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했다. 녹음된 김 권사 목소리는 AI기술을 기반으로 합성해 성경 66권을 읽어주는 오디오 성경이 된다. 이날 작업은 김 목사의 권유로 이뤄졌다. 그는 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소속 서울 명성교회(정우홍 목사)에서 음악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김 목사는 “(내가 먼저) 찬양음반과 오디오 성경을 만들어 보이셀라의 오디오 성경 애플리케이션인 바이블리에 올렸다”며 “어머니가 제 찬양을 계속 들으신다는 걸 알았고, 어머니 목소리로 읽어주는 성경을 남겨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목사에게 어머니가 읽어주는 성경은 목소리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는 “지금이 제일 유복하고 행복한 시절이라 말할 정도로 우리 집은 늘 가난하고 어려움이 많았다”면서 “그럼에도 어머니는 믿음을 놓지 않으셨고, 나에겐 신앙의 스승이었다”고 전했다.
김 권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성장의 밑거름인 ‘빨간 가방’을 든 구역장 중 한 명이었다. 국민일보가 창간됐을 땐 ‘복음 실은 신문’이라며 없는 살림에 자비로 100부, 200부씩 신문을 사 송파구 삼전동 단독주택에 신문을 넣었다. 그 신문을 배달한 사람이 김 목사였다. 그렇게 김 목사는 어머니를 통해 신앙의 기억을 켜켜이 쌓았다. 김 목사는 “어머니는 숙제 검사는 안 해도, 기도했는지는 늘 물어보셨다. 기도하도록 방에 들여보내면 잠자기 일쑤였는데 어느 순간 스스로 기도했다”고 말했다.
‘지금이 제일 행복한 때’라 여기는 김 목사의 눈에 최근 어머니의 삶이 들어왔다. 그는 “(어머니는) 뇌경색으로 쓰러졌고, 쓸개를 떼내는 등 수술만 9차례나 했다”면서 “5년 전엔 직장암 판정도 받았는데 감사하게도 방사선 치료만 받고도 건강하시다”고 했다. 어머니의 목소리로 만든 오디오 성경을 김 목사가 기대하는 건 당연했다.
김 목사는 “(녹음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데 가슴이 뜨거워졌다. 오롯이 어머니 목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면서 감정이 북받치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어머니는 ‘하나님 영광 위해 살라’며 저에게 하신 말씀을 아이들에게도 하신다”며 “어머니께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이 오디오 성경을 통해 아이들에게 이어졌으면 한다”고 전했다. 김 권사의 오디오 성경은 USB에 담겨 김 목사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현재 바이블리에선 첫 오디오 성경을 만든 고 하용조 목사와 이재훈(온누리교회) 유기성(선한목자교회) 목사 등 목회자들의 목소리로 만든 성경을 들을 수 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