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예배의 단을 쌓는 믿음



이제 대면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됐지만 비대면 예배의 습관에 젖어 아직도 교회로 돌아오지 못하는 영혼들이 많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며 아브람을 통해 예배의 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겠습니다.

창세기 12~13장에는 아브람의 부족함과 미숙함이 나옵니다. 아브람은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하신 하나님 말씀에 따라 하란을 떠나 가나안 지역의 세겜에 정착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돼서 벧엘 동쪽 산으로 갑니다. 이후 애굽을 거쳐 다시 벧엘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왜 여호와의 지시대로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돌고 돌아왔을까요. 원주민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 때문에 그런 겁니다. 불안해하는 사람에게 뒤따라오는 감정은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이 가득했던 아브람은 애굽에 들어갈 때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말하며 바로를 속였습니다.

이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아내인 사래를 통해 후손을 주신다고 하신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린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비겁한 아브람을 벌하지 않고 오히려 바로에게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아브람의 약한 믿음을 이해하시고 그의 서투른 선택을 탓하시는 대신 그 선택을 활용해 하나님이 애굽의 신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알리신 겁니다.

아브람은 시종일관 불안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방황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무조건 품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애굽에서 한 행동을 이해하셨습니다. 조카 롯과 땅 때문에 다투다 롯에게 좋은 땅을 양보한 아브람에게 약속을 저버렸다고 질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를 격려하며 변함없는 약속을 다시 해주십니다. 오늘 본문이 그 증거입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 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 13:14~15)

결국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됐습니다. 먼저 선택권을 가진 롯은 탐욕 때문에 눈앞에 좋은 것만 탐하다 멸망했습니다. 아브람은 눈을 들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면서 ‘열국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부족한 아브람에게도 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세겜과 벧엘에서 단을 쌓았습니다.(창 12:7~8, 13:4)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18절) 새번역 성경은 “아브람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롯이 제단을 쌓았다는 구절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만드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자 복의 근원자가 됐습니다.

인체의 장기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심장입니다. 교회의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는 교회의 심장입니다. 예배를 통해 말씀이 선포되고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 삶의 변화가 생깁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교회의 기능이 상실됩니다. 예배 없는 교회를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코로나 확진이 극심했을 때 교회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예배를 못 드리는 것이었으며 교회가 가장 원한 것은 예배였습니다. 그때의 간절함을 상기하며 진정한 예배자로 세워지길 소망합니다.

유지영 목사 (기독교한국침례회 국내선교회장)

◇기독교한국침례회 국내선교회는 교단의 국내 선교를 담당하는 주요 기관입니다. 개척교회 미자립교회 농어촌교회를 섬기고 한미 전도대회, 킴세미나, 북한 선교 등을 하며 교회 회복과 자립을 위한 교회 활성화 사역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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