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세대론은 주로 ‘MZ세대’를 중심으로 전개돼 왔다. 하지만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MZ세대는 지나치게 인구 범위가 넓어 정교한 세대론으로서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GEN Z’는 현재의 10대 후반∼20대 후반에 걸쳐있는 Z세대를 탐구한다. 인류학자, 언어학자, 역사학자, 사회학자가 함께 쓴 책으로 미국과 영국의 18∼25세에 대한 온라인 언어·밈 분석, 설문조사,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이 세대의 정체성과 가치관, 문화 등을 그려냈다.
Z세대를 이전 세대와 구분짓는 가장 굵직한 경계선은 인터넷이다. “Z세대, 포스트 밀레니얼, 주머(zoomer), 또는 i세대로 명명되는 이들은 인터넷 없는 세상을 전혀 모르는 최초의 세대다. Z세대 최연장자 축에 속하는 이십대 중후반은 월드와이드웹이 대중 앞에 등장한 1995년 전후로 태어났다.”
기술은 사용자들의 행동과 언어, 사고에 투영된다. 디지털 기술은 Z세대가 온라인에서 존재하는 방식은 물론이고 실제 삶과 문화, 가치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Z세대의 방식과 규범은 이제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까지 점령하고 있다. 이것은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Z세대를 알아야 답할 수 있는 문제다.
책은 Z세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정체성과 진정성이라고 분석한다. 이들은 정해진 정체성을 수용하거나 선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정체성을 탐색하고 창조한다. 젠더를 표현하는 Z세대의 어휘를 보면, 남성으로도 여성으로도 정체화하지 않은 ‘논바이너리’, 태어났을 때 부여받은 젠더와 젠더 정체성이 일치하는 ‘시스젠더’, 양성 중 한 성에서 다른 성으로 변한 ‘트랜스’, 남성성 여성성 양성성 사이를 오가는 ‘젠더 플루이드’, 남성과 여성이 혼합되어 나타나기도 하는 ‘젠더 퀴어’, 사회적 범주로서 젠더를 전면 부인하는 ‘포스트젠더’나 ‘에이젠더’ 등 갈수록 세분화되고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 포스트 밀레니얼 대표 표본을 조사한 결과, 두 국가 모두에서 자신의 젠더를 ‘스트레이트(이성애자)’라고 정체화한 응답자가 60%에 그쳤다.
“포스트 밀레니얼은 정체성을 다루는 방식, 그중에서도 젠더와 섹슈얼리티 정체성을 다루는 방식에 혁신을 일으켰고, 유연성을 높이는 더 많은 선택지를 가져왔다.”
Z세대에게 정체성이란 유동적이고 다양하며 선택가능한 것이다. 결혼도, 가족도 마찬가지다. 가족은 친구 같아지고, 가까운 친구는 가족 같아지고 있다. Z세대는 가까운 친구 무리를 ‘팸(fam)’이라고 부른다. 팸은 이 세대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지표이기도 하다. 이들은 우정을 중시하고, 연애를 부담스러워한다.
Z세대는 인터넷을 통해 기성세대가 알려주지 않은 새로운 길들을 발견했다. 이것을 혼란이나 방종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다양성의 확장으로 평가한다.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규정할 수 있어야 하며 사회에서 공정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신념은 어쩌면 Z세대가 가장 공감하는 세계관인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미세하고 정교하게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은 진정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체성을 표현할 때 주로 소수자성을 드러내는 데 집중하는데, 약점을 드러내는 것은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평가받는다. 위선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고 진정성에 집착하는 이 세대는 물려받은 가치와 관행의 상당수를 거부하고 변형해서 받아들인다. 또 Z세대는 온라인 공동체 등 리더 없는 집단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쌓고 있다. 리더는 권위적인 존재라기보다 집단의 목표 달성을 위한 조력자로 여겨진다.
Z세대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들을 평가할 때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했는지에 높은 점수를 준다는 조사 결과는 흥미롭다. 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과 두려움으로 가장 자주 언급한 문제는 기후위기였다. 미국에 사는 인터뷰 참여자는 총기 규제를 자신과 또래집단 대부분이 동의하는 최고 우선 과제로 꼽았다.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열망이 있지만 기존의 정치참여 수단에는 환멸을 표시했다. 과도하게 위계적이고 현실과 유리되어 있으며, 세상의 중대한 문제들을 해결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소셜미디어와 또래 친구들, 공동체를 통해 정치에 적극 참여한다. 블랙라이브스매터 운동은 포스트 밀레니얼이 주도했다.
이 책은 Z세대를 미성숙하거나 자기중심적이며 사회에 무관심한 세대로 묘사하는 기존 관점에 도전한다. 오히려 앞으로 변화할 세상에서 이들이 길잡이나 해결자가 되어줄 가능성에 주목한다. “어쩌면 이 세대가 개인과 제도를 진일보하게 할 새로운 태도와 규범을 알려줄 전령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일해야 하고, 무엇이 가족을 구성하고, 친구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들이 공유하는 공감대는 폭넓은 변화를 반영하는 동시에 촉발한다.”
Z세대는 어떻게 보더라도 낙관할 수 없는 세상을 물려받았다. 이들이 마주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기성세대는 실패해왔다. 아무도 답을 줄 수 없는 상황에서 이들은 디지털 기술과 또래 친구들에 의지해 새로운 길을 찾아나가고 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