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는 내 몸이 아니라 그냥 나야. 나는 내 몸으로 말해지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행하는 것으로 말해지는 존재야.”
주인공인 ‘나’는 “이혼한 몸으로 어떻게 살거냐”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1983년생인 나는 몸에 얽힌 폭력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아주 마른 몸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힘이 없고 용기가 없을 거란 선입견에 갇혀 주눅 든 10대를 보냈다. 20대엔 왜소한 몸에 대한 콤플렉스와 데이트 폭력을 겪었다. 결혼했지만 남편과 ‘몸’에 대한 생각 차이를 좁히지 못해 결국 헤어졌다.
여성의 정체성이 ‘몸’으로 인식된 시대를 산 건 1959년생인 엄마 미복도 마찬가지다. 미복이 어릴 때 마을의 상습 성폭행범은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고 오히려 피해자들이 마을을 떠났다. 또래보다 성숙한 몸을 가진 미복은 학교 선생님에게 추행 당하고, 여자라는 이유로 원하는 만큼의 교육을 받지 못했다. 집에서 도망친 미복은 낯선 도시에서 거짓 웃음을 팔면서 밑바닥 인생을 살아야 했다.
지금 한국 문학에서 가장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해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44번째 소설로 이서수의 ‘몸과 여자들’을 선택했다. 이 작품은 여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자문,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자기 고백이다. 소설은 ‘소통의 불가능성’을 이야기하며 끝이 난다. ‘나’는 여성의 개념이 일반화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살아가기로 한다.
이서수는 작가의 말에서 “나는 전해야 할 누군가의 목소리가 있다는 믿음을 품고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한다. 이소설 역시 그러한 믿음에서 출발했다”며 “이 소설의 시작점은 여성의 다양한 섹슈얼리티를 그리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이어지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밝혔다.
저자는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나 단국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201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구제, 빈티지 혹은 구원’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당신의 4분 33초’로 제6회 황산벌청년문학상을, 단편소설 ‘미조의 시대’로 제22회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장편소설 ‘헬프 미 시스터’를 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