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내는데…” 명절이 더 외로운 사람들

게티이미지뱅크






“가족이요? 있었지요. 한때는요. 스마트폰에 저장해 놓은 몇 장 안 되는 사진도 열어본 지 6~7년 됐습니다.”

16일 서울 강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세훈(가명·67)씨는 1인 가구로 살아온 지 올해 11년 차다. 정씨도 한때는 삼 남매와 아내를 둔 5인 가구의 가장이었다. 하지만 연이은 사업 실패, 도박, 알코올 중독은 그의 곁에 있던 가족들을 떠나게 했다. 그는 “명절이나 아이들 생일 때가 되면 평상시보다 더 생각이 나는데, 그리운 마음이 무뎌지다가도 가슴을 쿡 찌를 때가 있다”고 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간한 ‘2022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20년 1월과 10월 자살자 수는 전월 대비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는 시기인 설과 추석, 즉 명절 기간에 가족과의 관계가 단절된 이들이 정서적 고립 상태에 놓이게 됨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다.

2020년 경찰청 변사자통계에 나타난 동기별 자살 현황도 개인의 심리적 상태를 돌보지 않았을 때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은 생명을 잃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통계에서는 정신적 문제로 자살에 이른 사람들이 4905명으로 38.4%를 차지했다. 자살 사망자 10명 중 4명이 마음을 돌보지 못했음을 가리킨다. 경제생활(25.4%) 육체적 질병 (17.0%) 가정(7.0%) 문제가 뒤를 이었다.

이구상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본부장은 “다른 사람들은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데 자신은 그러지 못한다는 상실감, 취업 문제, 가족과의 만남에서 발생하는 갈등 요인 등이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명절 전후로 외지에서 홀로 생활하는 청년, 중장년 1인 가구, 홀몸 노인, 자살유가족 등 자살 고위험군을 위한 정서적 돌봄이 필요한 이유다.

전문가들은 주기적으로 안부를 묻고 최소한의 사회적 관계망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생명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본부장은 “이탈리아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주기적으로 연락했더니 자살률이 줄어들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며 “1인 가구 1000만 시대를 앞둔 상황에서 ‘텔레 체크’(전화로 안부 묻는 것)만 활성화되더라도 견고한 심리적 지지대를 구축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각 지역, 전 세대에 걸쳐 인적 네트워크를 가동할 수 있는 교회가 정서적 돌봄의 울타리를 제공하자는 제언도 나온다. 양두석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안실련) 자살예방센터장은 “한 교회가 모든 세대, 모든 이웃을 섬길 필요는 없다”며 “청년들이 모이는 교회는 또래 청년에게 안부를 묻고, 교회 인근에 홀몸 노인이 계신다면 그들의 말벗이 돼주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교회가 이웃 섬김에 대한 순수성을 갖고 지역 내 공공기관과 협력할 때 보다 촘촘한 사역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부터 서울 마포구청과 협력해 복지 사각지대 발굴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신생명나무교회(장헌일 목사)는 설 명절을 앞두고 쪽방촌 주민과 홀몸 노인을 위한 떡국 잔치와 선물 전달식을 준비하고 있다. 장헌일 목사는 “홀로 일상을 보내는 분에게 명절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는 시기”라며 “교회에 이웃을 초청하는 데 부담이 된다면 위로의 마음을 담은 도시락이나 밀키트를 배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전했다. 이어 “고독사(死)는 고독생(生)의 연장에서 찾아오는 것”이라며 “삶이 외로워 차갑게 식어가는 이들의 손을 잡고 온기를 전하는 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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