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네덜란드가 미국의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방침에 동참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와 램리서치, KLA와 네덜란드 ASML, 일본 도쿄일렉트론 등 세계 5대 반도체 장비 업체가 수출 금지 공동 전선을 형성하게 됐다.
미 당국자는 “일본과 네덜란드 관리들이 전날 워싱턴DC에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주재로 고위급 협상을 진행하고 최첨단 반도체 장비에 대한 대중국 수출 통제를 부과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고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와 뉴욕타임스(NYT) 등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 정부는 지난해 10월 미국 기술과 장비를 활용한 반도체 및 관련 제조장비의 대중국 수출 통제를 발표했다. 이후 일본, 네덜란드의 동참을 촉구해 왔다. 중국이 미국의 수출 통제 조치를 우회하지 못하도록 비슷한 기술력을 지닌 동맹을 규합해 규제를 촘촘히 하려는 의도였다.
ASML은 이미 초미세공정 핵심 장비인 최첨단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중국으로 수출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그러나 네덜란드에 이보다 낮은 기술력이 쓰인 심자외선(DUV) 노광장비 수출까지 조치를 확대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수출 통제 조치가 시행되면 해당 기업과 국가의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ASML은 매출의 약 18% 가 중국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도 2021년 반도체 제조장치 해외 판매액(2조9705억엔) 중 중국 비중이 33%(9924억엔)로 가장 많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도쿄일렉트론은 2021년 4월부터 1년간 매출액의 26%를 중국에 의존했다.
파장이 큰 만큼 수출 규제 방식과 범위 등 세부사항이 확정되기까지는 수개월 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ASML 측은 성명을 내고 “고급 반도체 제조 기술에 초점을 맞춘 정부 간 합의가 이뤄졌다”면서도 “(합의가 이행되려면) 세부 사항이 있어야 한다.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내부 검토를 진행한 뒤 미국과의 조정을 거쳐 규제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중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이번 합의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미 정부는 두 회사의 대중 수출 금지를 1년 유예했으나 이 조치가 1년 뒤에도 계속 적용될지는 불투명하다. 미·중 갈등이 심화하면 전면적인 수출 금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김준엽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