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몹시 추운 어느 날, 서울 마포대교에 서 있던 남학생 옆에 한 여대생이 가만히 다가와 섰다. 남학생은 사흘 전 페이스북 대나무숲(대학별 커뮤니티) 페이지에 “마포대교로 간다”는 글을 올렸다. 전후 사정을 적지는 않았지만 극단적 선택 의도를 모를 수 없었다. 글을 쓰고 사흘을 더 고민하다 다리에 섰는데, 생면부지 여대생이 나타난 터였다.
“늦지 않아 다행이에요.” 여대생은 말했다. 그리고 물었다. “대나무숲에서 봤는데… 맞죠?” 남학생은 화를 냈다. “무슨 상관이에요?” 여대생은 웃으며 답했다. “이젠 상관이 있죠. 이렇게 같이 서 있으니까.” 떼쓰듯 언성을 높이던 남학생은 결국 그를 따라 카페에 가서 긴 대화를 나눴다. 여학생은 지난 사흘간 매일 마포대교에 왔다고 했다. 대나무숲 글쓴이를 말리려고. 남학생은 다시 글을 올렸다. “사실 아직 살아갈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래도 제 손을 잡아줘서 고마워요.”
2019년 4월 강원도 춘천시 소양2교에는 20대 남성이 서 있었다. 난간에 위태롭게 기대 하염없이 강물을 바라볼 때, 행인이 등장했다. 늘 다니던 길인 듯 빠른 걸음으로 다리를 건너던 그는 청년을 발견하곤 망설임 없이 다가갔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청년의 등에 손을 얹는 거였다. 그러곤 토닥였다. 다 안다는 듯이, 괜찮다는 듯이. 잠시 후 경찰차가 도착했다. 춘천시청 상황실 직원도 CCTV로 청년의 심상찮은 모습을 발견해 경찰에 급히 알린 터였다. 난간 너머로 몸을 던지려던 청년은 결국 주저앉았다. 그가 토해내는 사연을 경찰이 차분히 들어주는 걸 확인하고서야 행인은 자리를 떴다.
엊그제 서울 서강대교에서도 한 여성이 난간에 걸터앉아 있었다. 이를 본 운전자가 다리 중간에 차를 세웠다. 5분간 지켜보다 의도를 파악하곤 다가가 끌어내렸다. 지나가던 행인이 달려들어 도왔고, 다리 밑에는 119 구조보트가 도착해 있었다. 절망에 허덕일 때 이렇게 누군가 내밀어주는 손이 있기에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여성에게 그 운전자는 말했다. “괜찮아요”라고.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