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일공동체(이사장 최일도 목사)가 1988년 11월 서울 청량리역 광장에서 라면을 나누며 시작한 ‘밥퍼나눔운동본부’(밥퍼) 무료급식 봉사는 올해로 36년째 진행 중이다. 대략 65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밥짓는 봉사에 팔을 걷었고 연인원 1000만명이 이곳에서 따뜻한 밥 한끼의 사랑을 경험했다. 대한민국 국민 5명 가운데 1명꼴이다. 나눔의 기적을 써내려가는 이른바 ‘K오병이어’의 현장에서 자원봉사자로 참여해봤다.
올 들어 첫 대설주의보가 내린 지난 26일 오전 11시.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 인근의 ‘밥퍼’ 식당에는 영하 10도 안팎의 날씨를 뚫고 한끼를 해결하러 찾아온 어르신들로 가득했다. 이들을 위해 식사 준비에 나선 국민일보 인턴기자 6명을 비롯한 자원봉사자 20여명은 2시간 먼저 도착했다.
봉사자들은 주방팀과 눈을 치우는 제설팀으로 나뉘어졌다. 주방에는 볼락 300마리가 손질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방팀은 칼과 가위를 잡고 한 시간가량 볼락 머리와 내장을 손질했다. 제설팀은 넉가래와 싸리비를 들고 새벽부터 쌓인 눈을 치웠다.
현장에서 만난 봉사자들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김정순(가명·79)씨는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다. 의미 있는 일이라도 하고 싶어 밥퍼 봉사에 동참했다”고 말했다. 엄마·남동생과 함께 봉사에 나선 김수현(16)양은 “무료 급식이라고 미리 밥을 퍼두지 않고, 그때그때 따뜻한 밥을 퍼 담아 주는 게 인상적이었다”며 “오신 분들이 맛있게 먹었다고 해줄 때 뿌듯했다”고 했다.
식사 시간이 다가오자 어르신들은 예닐곱 명씩 테이블에 둘러앉아 왁자지껄 수다를 떨었다. 식사 공간을 넘어 동네 사랑방을 연상케 했다. 식당 자리가 모두 채워지자 봉사자들이 무대 위로 초청받았다. 밥퍼를 처음 방문한 봉사자들이 이곳을 찾은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다. 어르신들이 “감사합니다”라고 환영해주자 인턴기자들을 포함한 봉사자들은 찬양곡 ‘축복합니다’로 화답했다. “축복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짧은 환영식이 끝나자마자 다시 일사불란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주방부터 식당 끝까지 일렬로 줄지어 선 봉사자들은 음식이 담긴 식판을 테이블로 날랐다. 이날 메뉴는 황탯국 두부조림 파래무침 그리고 배추김치였다. 식사가 시작되자 수다는 이내 ‘스포크’(숟가락과 포크를 합친 식기) 부딪히는 소리로 바뀌었다. 밥퍼 봉사에 경험이 많은 한 봉사자는 “음식이 맛있는 날이면 으레 이렇게 조용해진다”고 웃으며 말했다.
식사가 끝난 뒤에는 곧장 뒷정리가 이어졌다. 설거지와 식당 청소, 다음 날 식사 준비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수세미 소독을 끝낸 뒤 자원봉사자들은 밥퍼 마당에 모여 기념사진을 남겼다.
최근 서울 동대문구청과 ‘무단증축 논란’을 빚고 있는 밥퍼 측은 이에 아랑곳없이 ‘더 큰 섬김’으로 맞서고 있다. 다일공동체는 1일부터 오전 7시 떡국과 누룽지 같은 메뉴로 아침 배식을 개시한다. 다일공동체 측은 “현재 물가가 30%가량 오르는 등 식사 준비가 힘든 상황”이라며 “하지만 추운 날 더 외로운 무의탁 어르신들이 차가운 쪽방이 아닌 밥퍼에 모여 교제할 수 있도록 우리가 좀 더 부지런히 움직이겠다”고 말했다.
한편 밥퍼를 운영하는 다일공동체는 현재 동대문구청과 법적 갈등을 벌이고 있다. 동대문구청은 불법 증축을 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다일공동체에 건축물 시정 명령을 내리고 이행강제금을 부과했다. 최일도 목사는 “지금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구청장과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며 “주민소환 추진 시점인 4월 5일 전까지 동대문구에 위치한 대학교 총학생회와 간담회를 가지면서 구청의 답변을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나영 김동규 김세윤 이현성 조승현 황수민 인턴기자 jong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