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며 기도하는 걷기 묵상, 이번엔 대한민국 뿌리를 찾는 길이다. 서울 지하철 4호선 명동역에서 시작한다. 1번 출구로 나와 대한적십자사를 끼고 돌다가 건널목을 건너면 남산 예장공원이다. 조선시대 군사들이 무예를 닦는 훈련장으로 쓰였다가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 관사가 들어선 자리, 서울 시내를 굽어보는 남산 예장자락 지하에 ‘이회영기념관’이 있다.
우당 이회영을 포함한 여섯 형제는 경주 이씨로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항복의 후손이다. 조선 최고의 가문이자 부자로 불렸고, 무엇보다 형제 모두 독립운동에 뛰어든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이다. 감리교인 이회영은 1908년 남대문 상동교회에서 이은숙과 결혼하는데 당시로선 보기 드문 신식 결혼이었다. 상동교회엔 전덕기 목사를 비롯해 김지호 이용태 이동녕 등이 교회 청년학원 교사로 재직했고 독립운동을 위해 신민회를 조직했다. 국운이 완전히 기울자 여섯 형제는 가진 땅과 재산을 모두 팔아 만주로 이주하고 그곳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운다. 이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봉오동 청산리 전투에 대거 참전해 일제를 상대로 대첩을 이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의 기원이 된 이들이다.
이회영기념관을 나오면 문학의 집과 문학기념관이 나온다. 과거 국가안전기획부장 관사를 문학의 집으로 만들었다. 서울유스호스텔은 옛 안기부 본관과 제6별관이 있던 자리로 군사독재에 반대하던 인사들을 가두고 고문한 현장이다. 이번 걷기 묵상은 성결교 군목 출신으로 서울신대 교수를 지낸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장의 저서 ‘골목길 역사산책: 한국사편’(가디언)을 읽고 떠나면 좋다. 최 소장은 이 일대를 “국가정보기관의 다크투어 현장”이라고 불렀다. 다크투어는 흑역사를 반추하며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는 여행이다. 이회영의 손자 이종찬은 국민의정부에서 국가안전기획부를 국가정보원으로 바꾸고 초대 원장을 지낸 인물이다.
터널을 지나 안기부 제5별관이던 지금의 서울시 중부공원여가센터에서 드디어 남산공원길로 올라선다. 발아래 서울 도심 전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시각장애인도 함께 걸을 수 있도록 노란색 표지와 편안한 매트가 깔린 ‘배려의 길’이다. 혹한기를 뺀 봄부터 가을까지는 시냇물도 흐른다. 졸졸 소리에 귀까지 즐거운 걷기 천국이다.
남산공원길 북측순환로 끝에서 계단을 올라가면 안중근의사기념관이다. 일제가 1925년 조선신궁을 세운 자리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 의사의 기념관이 들어선 것이다. 영화로도 제작된 뮤지컬 ‘영웅’이 뜨거운 안중근을 노래했다면, 소설가 김훈의 ‘하얼빈’은 가늠자와 가늠쇠 앞에서 주저함이 없었던 차가운 안중근을 묘사한다. 거사 뒤 태극기를 펼쳐 들고 ‘코레아 후레(코리아 만세)’를 외쳤던 황동색 안 의사 동상 뒤편으로 ‘민족정기의 전당’이라고 적힌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정신이 번쩍 든다.
기념관 아래는 백범광장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 주석과 이회영의 동생이자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 선생의 동상이 서 있다. 이회영 여섯 형제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서 광복을 맞아 조국으로 돌아온 이가 이시영이다. 조선시대 사마시에 급제해 공직에 오른 뒤 대한제국 승정원 승지로 황제를 보필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무총장과 재정부장을 역임했다. 조선왕조-대한제국-임시정부-대한민국의 공직을 모두 역임한 인물이다.
광장 아래로 내려와 ‘서울로7017’로 들어선다. 차가 다니던 고가도로를 걷기 천국으로 만든 공중보행길이다. 서울역이 보일 무렵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빌딩 숲 사이에 석조 예배당이 홀연히 나타난다. 1885년 제중원 신앙공동체에서 시작한 남대문교회이다. 고풍스러운 석조 예배당에서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을 떠올리는 기도로 오늘의 걷기를 마무리한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