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 달란트로 미자립교회 도우니 행복”



“하나님이 나를 목회자로 만든 이유는 뭘까 생각해봤어요. 우선 제가 가진 재능을 나누라는 뜻 같더군요. 그래서 작은 교회들을 상대로 봉사하게 된 거죠.”

31일 인천 미추홀구 행복한교회에서 만난 이 교회 박정석(60·사진) 담임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박 목사는 주로 미자립교회를 상대로 피아노를 조율해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 교회를 개척한 이듬해인 2012년 이 일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자그마치 12년째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피아노 조율 기술을 익히게 됐을까. 그 과정을 설명하려면 박 목사의 젊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전남 신안에서 나고 자란 박 목사는 스무 살이 됐을 때 인천으로 왔다. 실업계고를 나온 그는 은행 등지에 취직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군 복무를 마쳤을 때 그의 나이는 스물두 살. 박 목사는 서울 낙원상가에서 악기를 다루는 기술자들을 따라 다니며 일을 배웠다. 이후엔 인천에서 피아노 대리점을 운영했다. 박 목사는 “학원 다니며 조율 기술을 익힌 사람들보다 내 실력이 더 뛰어났다. 대리점이 제법 성공하면서 돈도 많이 벌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어느 순간부터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인생이 덜컹거리게 된 시기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친 97년쯤부터였다. 그즈음 자영업을 하던 대다수 한국인이 그렇듯 그의 사업체도 문을 닫아야 했다. 남은 건 수천만원에 달하는 빚더미였다. 박 목사는 그제야 20대 시절 목회자가 되겠노라 서원 기도를 했던 일을 떠올렸다.

“정말 세상의 바닥까지 내려간 기분이었어요. 그렇게 쫄딱 망하고 나니 제가 진짜로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알겠더군요. 2001년 총신대에 입학했고 같은 대학 신학대학원을 나와 2010년 목사 안수를 받은 뒤 이듬해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지금 저희 교회엔 15명 정도가 출석하고 있어요.”

박 목사의 ‘조율 사역’은 주로 개척교회를 상대로 이뤄진다. 먼 거리를 이동하긴 힘든 탓에 그간 조율하러 다닌 곳은 주로 수도권 교회였다. 그는 “조율을 마친 뒤 교회 관계자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낀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 사역을 하면서 특별히 어려움을 느낄 땐 없어요. 앞으로도 하나님이 제게 주신 재능을 기쁜 마음으로 나누면서 살 겁니다. 기회가 된다면 창고가 하나 생겼으면 해요. 중고 피아노를 기증 받아 창고에 놔둔 뒤 피아노가 필요한 교회들에 보내주는 일을 해보고 싶거든요.”

인천=글·사진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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