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例話)집은 수준이 낮다고 무시되기 일쑤였다. 설교 가운데 어려운 부분을 예를 들어 풀어주는 사례 모음집이지만, 출처가 불분명하고 일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교묘하게 보태져 가짜뉴스처럼 유통되기도 했다. 지적이고 성실한 목회자들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또 하나의 예화집이 현재 기독 출판계에서 역주행하며 베스트셀러 상단 목록에 올라와 있다. ‘들리는 설교 유혹하는 예화’(선율)가 주인공이다.
100권의 책에서 뽑아낸 100개 문장과 100가지 말씀이 모여 있다.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로부터 세이렌의 유혹을 이야기하고,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의 ‘중력과 은총’을 통해 누가복음 23장이 묘사한 예수님 좌우에 달린 강도들의 십자가를 말한다. 김동건 영남신대 교수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CS 루이스의 ‘예기치 못한 기쁨’,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 소설가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 등 신학 소설 에세이 장르를 넘나들며 인용한다. 책을 통해 발견한 문장에 깊이 있는 성찰이 담겨 말씀이 전해질 마음 속 공간을 개척하고 있다.
출처 모를 예화집이라기보다 수준 높은 수상록에 가까운 책의 저자 이재현(54) 충광교회 목사를 지난 31일 광주광역시 교회 목양실에서 만났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소속으로 300명 성도와 단단한 목회를 이어가고 있는 이 목사는 자신을 한없이 낮췄다.
“변방에서 사역하는 무명의 목회자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코로나 암흑기에 저처럼 신앙의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한국교회 수많은 중소형 교회 목회자들이 책을 통해 정서적 공감을 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목회엔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문제가 있다. 그리고 은혜가 있다.’ 균형을 잃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는, 힘들고 아픈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저는 넘어질 때 질문이 생겼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책을 찾아 읽었습니다.”
책은 “신이 우리를 도와주지 못할 때, 우리가 신을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영국 성공회 사제 패트릭 우드하우스가 저술한 책,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에서 마지막까지 희망을 기록한 ‘에티 힐레숨’의 90쪽에 나온 이야기를 전한다. 50대 50 상황에서 1%를 틀어 자포자기가 아닌 자기비움과 자기희생의 길로 나아가는 구원의 여정을 안내한다. 이윽고 고린도후서 1장 9~10절,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실 주님을 이야기한다.
이 목사는 “책은 자동차 여행”이라고 표현했다. 일단 저자가 운전하는 차의 옆자리 조수석에 앉아 저자가 가고자 하는 대로 실컷 가보고 돌아와 보면 이전과는 다른 나를 마주하게 된다고 했다. 비평을 앞세우기보다 공감적 독서가 우선이다. 일단 저자가 운전하는 차로 유람해 보고 비평은 다 돌아보고 와서 해도 되니까. 이 목사는 “설교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내 맘에 들지 않더라도 일단 목회자를 신뢰하는 마음으로 진리로 향하는 여정의 옆자리에 동승한다면 예배 시간이 짜릿한 순간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소문난 다독가인 이 목사는 지역에서 함께 책을 읽고 묵상하는 동료 목회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2016년부터 광주 ‘아카데미 숨과 쉼’의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예상치 못한 독서를 권하는 목회자 모임 ‘남수다’가 소중하다고 소개했다. 2019년부터 성서유니온 ‘묵상과 설교’에 ‘주간 예화’를 연재 중인 이 목사는 수준 있는 예화집 두 번째 책을 기획 중이다.
더불어 현장을 통해 책을 넘어선 감동을 전하는 일에도 관심이 많다고 했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 서려있는 일본 후쿠오카,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이 녹아있는 홋카이도 아사히카와 등은 이미 성도들과 답사를 마쳤다.
광주=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