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에너지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김모(21)씨는 지난해 12월 대화형 인공지능(AI)인 ‘챗GPT’의 도움을 얻어 기말고사를 치렀다. 평소 AI에 관심이 많았던 김씨는 출시 보름밖에 되지 않은 챗GPT의 정확도가 궁금했다고 한다. 예상문제 중 개념을 정의하고 비교하라는 문제를 챗GPT에 넣자 5초 만에 답안이 만들어졌다. 김씨는 답안에 틀린 곳이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만 거쳐 그대로 외웠다. 시험 당일 8문제 중 6문제를 챗GPT가 써준 답안으로 적어 냈다. 결과는 ‘A+’였다.
지난해 11월 미국 스타트업이 개발한 챗GPT가 국내에서도 적극 활용되는 움직임이 보이면서 대학가가 술렁이고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챗GPT가 쓴 신년사는 그대로 나가도 되겠다”며 극찬할 정도로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내놓으면서다. 챗GPT를 이용해 과제를 제출하거나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이 등장하자 교수들도 고민에 빠졌다.
경영학 전공 대학원생인 A씨는 지난달부터 연구 과정에 챗GPT를 본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A씨는 1일 “챗GPT 덕에 헤매는 과정이 줄었다”고 말했다. 관련 논문을 무작위로 검색해 일일이 들여다봐야 했던 작업을 더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대신 챗GPT에 ‘이런 식의 연구를 하려고 한다’고 물으면 몇 초 만에 답을 얻을 수 있다. ‘원하는 의도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떤 구조로 글을 써야 하는지 알려 달라’고 묻기도 한다.
하지만 챗GPT가 부정행위나 표절 등 윤리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당장 새 학기 강의계획서에 챗GPT 활용 금지 방침을 공지했다. 챗GPT로 자동 생성된 답안이나 이를 약간만 수정된 답안을 붙여넣어 제출하는 식의 시험 답안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자동생성된 내용을 탐지할 수 있는 별도 알고리즘도 적용할 계획이다.
백정하 대학교육협회 고등교육연구소장은 “교육 기관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 또 하나 생겼다”며 “AI의 활용을 어디까지 인정해 줄 것인지, AI를 통해 과제를 하는 행위를 어떻게 비켜 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 같다”고 말했다.
AI를 잘 활용하면 오히려 연구에 도움이 된다는 반론도 있다. 챗GPT로 시험에 이어 리포트 작성까지 실험하고 있는 김씨는 “챗GPT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아니다”며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생산해내는 과정을 몇 초 만에 해결해주는 도구”라고 말했다. 결과물에 대해 사실 확인을 하는 건 결국 인간의 몫이라는 얘기다.
챗GPT를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경전 경희대 빅데이터응용학과 교수는 다음 학기부터 오픈북, 오픈인터넷 시험처럼 ‘오픈 챗GPT 시험’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 교수는 “챗GPT를 과신하는 데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는 만큼 오히려 챗GPT에 대한 교육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