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입원 중인 형제를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들의 병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그들 모두 우리의 사랑과 지원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라는 말씀을 기억합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이해하십니다….’
언뜻 보면 병문안을 간 어느 목회자가 환우 성도를 위해 나누는 설교 같다. 하지만 이 메시지는 미국의 인공지능 연구소 오픈에이아이(Open AI)가 만든 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봇 ‘챗GPT(ChatGPT)’가 만들어낸 설교문의 일부다. 6일 기자가 인터넷의 챗GPT 사이트에 들어가 ‘입원한 성도를 위해 5분 길이의 설교문을 만들어 달라’고 타이핑을 마치자마자 문장이 드르륵 생성되기 시작했다. 1분여 만에 완성된 영문 설교를 번역앱을 통해 한글로 바꾸기까지 3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3분 카레’ 설교문이 눈앞에
더 놀라운 건 설교 내용이었다.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진행되는 설교와 다름 없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에 들어가는 ‘팔복’ 내용에 이어 어려움에 처한 이를 도와야 한다는 권면과 함께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예시로 등장했다. 설교는 ‘그리스도의 평화와 사랑이 성도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축원한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이 설교문을 AI가 작성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평가를 맡겨봤다. 강현성(21·감리교신학대)씨는 “10점 만점에 8~9점을 주고 싶다”며 “왜 아픈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 우리가 처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돌이켜보게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설교는 자신의 경험과 더불어 말씀을 어떻게 묵상했는지에 대한 감정이 담겨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부분이 느껴져서 아쉽다”고 덧붙였다.
한미경(50·인천 삼산감리교회) 권사는 “무엇을 말하려는지 요점 파악이 어려웠다. 사람의 감동을 주기에는 부족한 것 같다. 6~7점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챗GPT에 ‘사순절 설교로 적절한 주제를 소개해 달라’는 의뢰도 해봤다. 1분도 채 안 돼 화면에는 ‘구원의 기적’ ‘긍지’ ‘희생’ ‘사랑’ 4가지 주제와 함께 관련 설명이 제시됐다(그래픽 참조).
“찬반 NO, 활용방안 논할 때”
‘챗GPT 신드롬’은 일상 속 깊이 침투한 상태다.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물론 목회 영역에서도 크고 작은 충격파로 다가온다. AI 설교문에 대한 신학도와 현직 목회자, 신학자의 반응 속에선 단순한 찬반 논란을 넘어서 영적, 윤리적, 신앙 전반의 문제로까지 확산될 조짐이 엿보였다.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김동환(기독교윤리학) 교수는 “(챗GPT는) 더이상의 찬반 문제일 수 없다. 얼마나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과거 ‘주석서(해설서)’처럼 좋은 설교문을 작성하기 위해 참조하는 방향으로 활용 가능하다. 온택트 시대의 ‘주석서’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어떻게 얼마나 활용할 것인지 개인윤리, 사회윤리적 관점에서 협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거 '복제양 돌리 사건'이나 '온라인 예배 찬반' 논의처럼 이미 새로운 기술이 나온 상태에서 찬반을 논의하기보다는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챗GPT가 목회자에게서 나오는 통찰력이나 독특한 관점, 영성 등을 대체할 수는 없다"면서도 "정보수집이나 그에 따른 시간 절약 등은 목회활동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인공지능 설교준비는 주객전도"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목사에게는 '진액을 짜내는' 설교 준비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저 시간을 아끼기 위해 설교를 AI로 준비한다는 것은 '주객전도'의 처사가 될 수 있다." 경기도 김포 이레교회 고삼원 목사의 견해다.
감리교신학대 유경동(기독교윤리 전공) 교수도 AI 설교문에 대한 우려되는 지점을 짚고 넘어갔다. 유 교수는 "사전적인 기능을 활용해 시간 단축 등으로 설교자에게 도움을 줄 수는 있다"고 수긍하면서도 "설교는 하나님의 계시이자 사건이다. 또 설교자와 청중 사이에서 일어나는 공동체적인 사건이다. 이런 부분이 고려되지 않은 채 적절한 주제와 조건 값을 입력해서 기술적이고 기능적인 설교문을 작성하는 것은 굉장히 제한적이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런 기술적 설교 속에 기쁨과 슬픔, 부활과 성령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을까, 진짜 생명력이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이단들의 정보점령 대비해야
AI가 작성한 설교로 성도들이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 일부 목회자는 "은혜는 개별적인 것이기에 받을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이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챗GPT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김동환 교수는 "기독교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 예를 들어 '구원은 어떻게 이뤄지나' 등에 대한 질문을 이단들이 활용, 온라인에 올리면 이 같은 데이터가 챗GPT의 답변으로 채택되면서 잘못된 정보가 전파될 수도 있다"며 이에 대한 대비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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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미국 인공지능 연구소 오픈에이아이(Open AI)가 지난해 11월 30일 공개한 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봇이다. 사용자가 대화창에 채팅하듯 궁금한 내용을 입력하면 딥러닝(심화학습)을 통해 대용량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맞춤형 답을 내놓는 서비스로, 출시 두 달여 만에 월간 사용자 1억명을 돌파했다. 이르면 이달부터 유료 서비스가 선보일 전망이다.박재찬 기자, 김나영 김동규 김세윤 인턴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