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교의 아버지’ 허드슨 테일러(1832~1905) 선교사가 1854년부터 7년간 중국 상하이와 닝보에서 사역하고 본국인 영국으로 귀국합니다. 그의 건강이 극도로 나빠진 것도 있지만, 중국 선교의 전략적 접근과 돌파구가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상하이 4대 성문과 성벽 안에는 많은 선교단체와 교단 선교부에 소속된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불모지인 중국 내지로 들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을 보며 충격을 받았습니다. 1865년 6월 25일 테일러는 흩어져 복음을 전할 일꾼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24명의 자발적이고 유능한 개척자들이 지도자가 되어 ‘중국 내지’로 흩어질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그는 조지 피어스와 함께 국제OMF의 전신인 ‘중국내지선교회’(CIM)를 설립합니다.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도 불립니다. 선교의 주도자가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선교를 주도하실 때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흩어진 사람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란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행 11:19)
당시 핍박으로 인해 흩어진 자들이 발생합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행 8:2)
흩어진 그들은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흩어진 자들은 사도 외에 이름도 얼굴도 없는 무명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들은 교육받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닌, 복음의 능력을 갖춘 자들이었습니다. 흩어진 자들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두려움 없이 복음을 전달했습니다. 처음엔 유대인에게만 전했지만(행 11:19), 이후에는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행 8:4)
그들이 어떻게 복음을 담대히 전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가 만유의 주되심을 확신하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박해와 핍박으로 교회를 무너뜨리고 죽이려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흩어진 자들은 로마령의 구브로와 구레네의 디아스포라들이지만, 다른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행 11:20) 디아스포라들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복음이 지역과 민족의 경계를 넘어 전달된 사건입니다. 그 흩어진 자들은 주의 손이 함께 함으로 수많은 사람을 주께 돌아오게 합니다.(행 11:21)
선교에 헌신한 한 청년이 CIM의 문을 두드립니다. 청년은 CIM으로부터 두 번이나 거절을 당합니다. 심지어 “당신은 국내에서 기도로 선교를 돕는 것이 좋겠습니다”라는 통보를 받습니다. 그 청년은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 ‘한 다리’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포기하지 않고 테일러 선교사에게 면담을 요청합니다. 그는 인터뷰 중에 “영국에는 두 다리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선교하기 위해 중국 땅에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한 다리를 가지고 중국에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하는데 못 가게 하십니까”라고 말합니다. 그의 말에 감동한 테일러는 1865년 10월 3일에 청년을 선발대로 보냅니다. 청년의 이름은 조지 스토트입니다. 그는 1867년 2월 교회가 전혀 없는 중국 원조우에 파송돼 22년간 학교와 병원, 교회를 설립했습니다. 오늘날 원조우성에는 놀랍게도 700만여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흩어지기로 작정한 한 청년을 찾으십니다.
공베드로 선교사(한국OMF 대표)
◇OMF는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가 1865년 설립한 ‘중국내지선교회’(CIM)로 출발했습니다. 1951년 중국의 공산화로 부득이하게 중국에서 철수하고 본부를 싱가포르로 옮겼습니다. 이후 OMF로 이름을 바꾼 뒤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1400여명의 일꾼들이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