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이던 제가 예수를 믿게 됐을 때 너무나 기뻤습니다. 온 세상이 그림책 같았고 지나온 삶이 소설 같았습니다. 그림책은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소설은 내 인생의 계획을 알려 주는 것이었습니다. 전에 그토록 좋아하던 문학과 철학, 인생에 대한 사색을 모두 끊어 버렸습니다. 그것이 신앙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내 인생과 어떻게 연결지어야 하는지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오래 믿은 사람들도 방금 믿은 나와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살아 있는 신앙은 무엇으로 나타나야 하는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의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산 위로 부르셨습니다. 그들에게 참된 복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1~3)
모든 사람이 행복하길 원합니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더 나은 상태에 있기를 욕망하는 것이니 누군들 불행하길 바라겠습니까. 불행한 사람도 사실은 불행하길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그게 행복에 이르게 할 줄로 잘못 알았기에 그리한 것입니다.
참된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사람됨에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존재, 곧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팔복산에서 선포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무엇을 소유한 사람이 아닙니다. 애통하는 자는 지위를 차지한 사람이 아니고, 온유한 자도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팔복의 사람은 ‘가진 사람’이 아니라 ‘된 사람’입니다. ‘됨’에서 ‘함’이 나오고, ‘함’에서 ‘가짐’은 의미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무엇을 ‘갖기’ 위한 것도 아니며, ‘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되기’ 위함입니다. 인격적으로 그리스도를 닮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참사람의 모본이시며 거기에 인생의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행복을 누리고 계신 분입니다. 그 복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분의 생애를 생각해 보십시오. 완전한 사람으로 오셔서 완전한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들 모두와 완전한 관계를 가지셨습니다. 그러나 그분도 불행한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시련, 만남과 헤어짐, 마침내 죽음까지 경험하셨습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고통 겪는 우리도 행복하기를 꿈꿀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팔복의 사람 되기를 꿈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인생을 어떻게 사시렵니까. 하나님 모른 채 살아가던 때처럼 사시겠습니까. 행복해지기를 포기한 채 진리 없이 사시겠습니까. 지금처럼 살다 죽어도 후회 없으시겠습니까.
예수님은 그 산에서 참된 행복을 말씀하셨습니다. 수많은 인류가 거기서 살길을 발견했습니다. 팔복산에서 울려 퍼진 그 말씀은 단지 육체의 필요만을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영혼의 생명을 갈망하던 자들에게만 들린 음성이었습니다. 그것은 참된 행복을 찾는 사람들에게 빛을 주었습니다(요 21:19).
우리 인생은 소중합니다. 아무렇게나 살기에는 너무 짧고 아주 잘 살아 내기엔 너무 깁니다. 말씀으로 구원받은 것처럼 진리로 참된 행복에 이릅니다. 팔복의 세계에 눈을 뜨십시오. 말씀에 은혜를 받으십시오. 행복이 당신을 기다릴 것입니다.
김남준 열린교회 목사
◇경기도 안양 열린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소속으로 1993년 설립됐습니다. 거룩한 예배와 목양, 체계적인 양육과 훈련으로 참된 신자를 양성하며 이들이 가정과 학교, 사회와 조국교회,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는 일꾼이 되도록 세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