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추수할 일꾼의 자격



해마다 신학생이 줄고 있습니다. 교회도 교회학교 등에서 봉사할 일꾼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이렇게 될 것을 아신 주님은 본문을 통해 기도 제목을 주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그렇다면 교회는 어떤 일꾼을 놓고 기도해야 할까요. 이미 직분받은 분들은 어떤 일꾼이 돼야 할까요.

저는 교육전도사 시절부터 ‘어떻게 하면 능력 있는 목회자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처음엔 독서를 많이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독서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설교를 잘해야 한다고 해서 설교 세미나도 많이 들었습니다. 또 다른 분은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해서 리더십 관련 도서를 탐독했습니다.

그러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니 예수님의 삶에는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덕목들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을 제외하고 세상 책을 읽으셨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의 설교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요 6:60). 처세술이나 대인 관계에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권세자들에게 미움을 받으셨고 군중들의 인기를 끝까지 붙잡지 못하셨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모함을 당하시고 쓸데없는 논쟁에 계속 빠지셨습니다.

제가 발견한 예수님의 성품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긍휼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늘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오병이어, 칠병이어 등의 기적을 베푸시기 전 먼저 무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아픈 이를 고치실 때도 항상 불쌍히 여기시며 치료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의 동기는 다른 지도자들과 달랐습니다. 바로 긍휼함에 있었지요.

본문에는 두 명의 시각장애인이 나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 불쌍히 여겨달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눈을 만지시며 고쳐주셨습니다. 그러자 아픈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 몰려옵니다. 주님은 그들을 다 고쳐주십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동기에 대해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라고 기록합니다. 이후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 제목은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였습니다. 추수할 일꾼들이 왜 필요할까요.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보니 무리가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보시고 우리에게 일꾼을 보내 달라며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일꾼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리들이 불쌍해서입니다.

오늘날 교회에도 일꾼이 필요합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은 성도들을 돌보고 섬길 일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선교지에 선교사가 필요한 것도, 구원받지 못해 죽어가는 영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가득 채우기 위해 일꾼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무리가 불쌍해서 일꾼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감당해야 할 오늘날 일꾼들의 기본적 자질은 바로 예수님이 가지신 긍휼함입니다. 긍휼함이 있어야 기적도 치유도 일어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열심보다 긍휼함입니다. 우리 마음 가운에도 예수님이 가지셨던 긍휼함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한 영혼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것에 대해 기뻐하실 것입니다.

요즘 교회 봉사가 왜 힘들어졌을까요. 사실 봉사가 힘든 것보다 긍휼함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굶주린 성도가 불쌍하면 교회 주방의 수고가 괴롭지 않습니다. 소외된 십대가 불쌍하면 교사 직분에 사명을 다합니다. 성도가 불쌍하면 목회자의 섭섭함이 사라집니다. 목회자가 불쌍하면 목회자의 모든 허물도 다 이해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능력있는 일꾼이 아니라 긍휼함이 있는 일꾼입니다.

김윤태 대전 신성교회 목사

◇대전신성교회는 대전 유성구 신성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소속 교회입니다. ‘애천애인(愛天愛人)’ 목회 철학과 마을 목회를 실천하는 선교적 교회를 세워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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