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처럼 살자… 말씀 실천하며 삶으로 하나님 드러내야”

이정민 한동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예수의 제자로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은 모두 호구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그가 지난 14일 경북 포항의 대학 연구실에서 제자들이 만든 ‘호구 포스터’ 곁에 선 모습.


MZ세대(198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 출생)가 가장 기피하는 단어 중 하나는 ‘호구(虎口)’일 것이다. 불공정에 민감한 이들에게 ‘어수룩해 자주 이용당한다’는 뜻의 단어가 달가울 리 없다. 이런 MZ세대에게 “호구의 삶을 살라”고 역설하는 대학교수가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Cas9)로 선천성 희귀 신경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이정민(46) 한동대 생명과학부 교수다. 2019년 ‘샤르코 마리 투스병’과 ‘레버 선천성 흑암시’ 치료법 개발로 화제를 모은 이 교수는 한동대 생명과학연구소장이자 바이오 스타트업 인엑소플랫 공동창업자 겸 최고연구책임자(CSO·chief scientific officer)다. 학계와 산업계 두 분야에서 신약 개발에 전념 중인 그를 지난 14일 경북 포항의 대학 연구실에서 만났다.
 
창조세계를 풍성하게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유전자의 특정 부위 DNA를 절단하는 유전자 교정(genome editing) 기술이다. 이 교수는 현재 이 기술을 활용해 염증성 장질환 치료제와 항암제 등을 개발한다. 알츠하이머 자폐증 우울증 등 난치병인 뇌질환 치료제 연구도 진행 중이다.

그가 희귀 질환과 난치병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는 건 돈이 없어 장애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희귀 질환에는 효과적인 신약이 있어도 한 번 접종하는 데 수십억이 드는 경우도 적잖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치료제 개발을 위해 그는 연구실 모토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개발한다’고 지었다.

“성경은 ‘누구든지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고 합니다. 돈이 없어 치료제를 구하기 힘든 이들에게 이 말씀이 실제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비록 그 치료제를 개발하느라 경제적 이익과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 대도요.”

DNA를 편집하는 유전자 연구엔 으레 생명 윤리 논쟁이 뒤따른다. 이 교수는 “하나님의 창조를 더 선명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게 유전자 편집 기술”이라며 “하나님이 준 지성을 활용해 인간을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돕는 일이기에 이 일이 재창조의 사역이라고 자부한다”고 강조했다.
 
시골교회 목사 아들의 오기

한동대 생명식품공학부 97학번인 그는 이 대학 3회 졸업생이다. 국내 유수 대학과 전공을 지원할 수 있는 성적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대학’ 한동대를 소신 지원했다. 친척들이 ‘한의대 가서 헌금 많이 하는 장로 돼라’고 설득했지만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가 한동대에 진학한 것”이라며 웃었다.

2001년 한동대 졸업 후 서울대 생명과학부에 진학해 석·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2009년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UCSD)와 하버드대 메디컬스쿨에서 박사 후 과정을 마치고 2017년 귀국해 유전자교정기업 연구소장을 지내다 2019년 한동대 교수로 부임했다. 해외 학계와 국내 산업계에서 경력을 쌓다 모교에 온 이유를 묻자 이 교수는 ‘오기’라고 답했다.

“전공에서 빛을 발하는 기독교인, 조국의 소망이 되는 청년을 양성하자는 목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한동대를 그저 ‘지방대’로만 보는 편견을 바꾸고 싶더군요. 그야말로 오기지요. 지방 소멸의 시대에 대항해 한국을 대표하는 바이오 대학으로 바꾸고 싶거든요. 지금도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이 원한다면 이곳에서 역사를 쓴다’는 마음입니다.”

이런 오기의 배경에는 시골교회 목회자로 평생을 헌신한 그의 아버지가 있다. 경기도 양평 옥천중앙교회 원로목사인 부친은 평생 청빈한 삶을 추구하며 ‘충성스러운 신앙’을 강조했다. “충성은 성령의 열매 아닙니까. 이것이 학교와 기업에서 과학자와 CEO로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하는 이유입니다.”
 
호구론

이 교수의 연구실 문 앞엔 제자들 사진과 ‘호구와트’(HOGUWART)란 문구가 적힌 그림이 걸려 있다. 연구실에도 ‘언제나 호구 같은 사람’이라고 적힌 포스터가 놓여있다. 이 교수는 “하도 ‘호구처럼 살자’고 외치고 다니니 학생들이 이런 걸 만들어 준 것”이라며 웃었다. 이어 “저는 우리 사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려면 누구든 호구가 돼야 한다고 본다”며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성경에서 예수는 속옷을 달라는 자에게 겉옷도 주고, 5리를 같이 가자고 하면 10리를 가라고 한다. 오른쪽 뺨을 치는 이에게는 왼쪽 뺨도 내주라고 한다.(마 5:29~31) 이를 두 글자로 줄이면 ‘호구’라는 게 이 교수 지론이다. 그는 “교회가 욕먹는 시대다. 주님 말씀을 실천하며 묵묵히 욕을 먹고 수치를 감당하는 사람, 그런 호구로 평생 지내며 삶으로 하나님을 드러내자고 수업 중 항상 강조한다”고 했다.

복음을 실천하는 호구가 되기 위해 이 교수와 제자들이 조성한 기금도 있다. 이름하여 ‘호구펀드’. 그의 제자 중 처음 사회에 진출하는 올해 졸업생이 호구펀드 1기 팀이다. 호구펀드는 훗날 자립준비 청년과 아프리카 선교를 위해 쓰인다.

그의 바람은 자신과 제자들이 ‘호구의 삶을 평생 사는 것’이다. “호구로 한결같이 살면 그 자체가 고유의 특색이 돼요. 세상이 아는 거죠. ‘희생하는 저 사람 덕에 공동체가 산다’는 걸. 저 역시 호구의 삶을 보여주는 교수로 평생 살고 싶습니다.”

포항=글·사진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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