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계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몰리면서 미국 대학에 이어 지방의회까지 ‘카스트’ 제도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으로 이주한 이들 사이에서도 태생에 따른 신분 차별이 성행하자 이를 막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AP통신은 워싱턴주 시애틀 시의회가 기존의 차별금지법에 인도 카스트 제도를 포함하는 내용의 새 조례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6표, 반대 1표로 통과시켰다고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 시의회 차원의 카스트 제도 불법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통신은 “이번 시애틀 시의회의 조치는 미국 내 남아시아 출신 주민들 사이에 카스트 제도에 기반한 차별을 금지해달라는 목소리가 커진 데 다른 것”이라고 전했다.
카스트 제도는 인도 힌두교도 사이에 1000년 이상 이어져 온 폐습으로, 태생과 출신에 따라 신분을 차별하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 내 힌두교 사회에서는 이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이어져 왔다. 불법화를 주장하는 측은 이 제도가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미국의 시민권 보호 원칙에 어긋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반대 측에선 이미 편견을 받아온 특정 카스트 집단이 공개적으로 비방당할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양측은 시의회 표결에 앞서 시애틀 시청 앞으로 맞불 시위를 벌였으며, 지난주까지 100여명 이상이 시의회 발언을 요청하기도 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인도계 이주민이 두 번째로 많은 국가다. 2021년 현재 남아시아계 이민자가 540만명으로, 2010년 350만명보다 80%가량 늘어났다. 남아시아계에는 인도뿐 아니라 방글라데시 부탄 네팔 파키스탄 스리랑카 출신도 포함되지만 인도 출신이 가장 많다.
조례안이 통과되자 찬달라(불가촉천민) 출신의 이민자 요게시 마네씨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드디어 신분 차별이 공식적으로 불법이 된 나라에 살게 됐다”고 감격했다.
미국 대학들은 일찌감치 카스트 제도를 불법화했다. 2019년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인근의 브랜다이스대학을 시작으로 브라운대 등이 속속 금지 대열에 동참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