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여성 자이납 카젬푸르씨는 지난주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전국기술자연합 행사에 히잡을 쓰지 않고 참석했다. 짙은 갈색 긴 머리를 뒤로 묶은 카젬푸르씨는 행사 중간 목에 둘렀던 스카프마저 바닥으로 던졌다. 바닥에는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사진이 투영돼 있었다.
지난해 9월 16일(현지시간)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체포된 뒤 구타 등에 의해 사망한 마흐사 아미니(당시 22세) 사건 이후 이란 전역으로 ‘노 히잡(No Hijab)’ 시위가 들불처럼 퍼진 뒤 테헤란에선 카젬푸르씨처럼 머리를 드러내놓고 활보하는 여성이 늘어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5일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종교법을 공공연하게 위반한 채 생머리를 드러내는 이란 여성들이 테헤란은 물론 이란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란 도덕경찰이나 혁명수비대의 단속은 표면상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카젬푸르씨가 전국기술자연합 토론회에서 히잡을 쓰지 않고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은 인스타그램 등 여러 SNS를 통해 확산되는가 하면 지방 방송 뉴스에도 거침없이 흘러나온다.
이란 여성들에게 히잡 작용은 종교법이 규정한 복장 의무 사항이다. 1979년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슬람 혁명이 일어난 뒤 관련법이 제정됐고 지금까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그런데도 최근 들어 ‘노 히잡’ 여성들이 계속 늘어나는 것은 두 가지 이유로 요약된다. 첫째는 지난해 시위 이후 여성들 사이에 널리 확산된 성차별 철폐에 대한 공감대다. 이란은 비록 이슬람에 입각한 신정일치 사회지만 중동에서는 보기 드물게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립된 공화국이다. 79년 이슬람혁명 이전부터 존재했던 민주주의 전통이 ‘히잡 의문사’를 계기로 여성들의 인권의식을 일깨웠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란 정부의 유화정책이다. 정부는 여성들의 ‘노 히잡’ 움직임을 무조건 강경 진압하는 게 결코 정권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시위는 노 히잡 슬로건을 앞세웠지만 사실상 지금 이란의 근간인 이슬람공화국 정체에 대한 부정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국제사회의 여러 제재로 50년 가까이 곤궁한 경제에 시달렸던 이란 국민의 봉기였던 셈이다.
NYT는 “하메네이와 강경 이슬람 성향의 현 정부도 더 이상 율법만 강요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쳤다”면서 “당분간 이란 여성 사이에 번지는 노 히잡 선풍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