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에 상장된 회사의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배 수준으로 주요국 중 가장 낮은 게 현실이다. PBR이 1배라는 것은 현재 기업 가치를 사옥 등 해당 상장사가 보유한 자산의 장부가만큼만 겨우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한국 증시에서는 지금 당장 자산을 청산하는 것이 나은 PBR 1배 미만 상장사를 공격해 주가를 끌어올리려는 행동주의펀드가 득세하고 있다.
26일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12~2021년 세계 45개국 중 한국 상장사의 PBR 평균치는 선진국의 5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상장사 PBR은 신흥국의 58%, 아시아·태평양 국가의 69%에 그쳤다. PBR을 국가별로 보면 미국 4.2배, 인도 3.9배, 호주·대만 각 2.4배, 브라질 2배, 프랑스 1.8배로 집계됐다. 한국은 신흥국 평균치(1.6배)에도 뒤처진다.
상장사 가치를 측정하는 또 다른 지표인 주가수익비율(PER)을 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PER은 주가가 해당 상장사 수익(주당 순이익)의 몇 배나 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한국 상장사 PER 평균치는 9.8배로 선진국 평균치(18.4배)는 물론 신흥국(12.3배)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인도 PER(24.5배)은 한국의 3배에 육박한다.
한국 상장사의 만성적인 기업 가치 절하를 가리키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이렇게 숫자로 증명된다. 정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이유로 지정학적 위험을 꼽는다. 대북 관계의 불확실성이 한국 상장사 주가를 누르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현재 전쟁 위험이 훨씬 큰 것으로 평가받는 대만의 경우 PBR·PER 모두 한국을 앞서는 상황이다.
만성적인 기업 가치의 저평가 현상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최근 한국 증시에는 행동주의펀드 바람이 불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가 설립자 이수만 프로듀서의 개인 회사 라이크기획에 일감을 몰아주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 사외이사 자리까지 따낸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대표적이다. 얼라인은 이달 초 JB금융지주 등 상장 은행계 금융지주사 7곳을 상대로 배당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주주 제안을 보낸 데 이어 최근에는 SBS 지분 투자에도 나섰다. 이외에 한국계 싱가포르 행동주의펀드인 플래시라이트캐피털파트너스는 KT&G를,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태광산업을 상대로 기업 가치 제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대상 기업 주가는 행동주의펀드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뒤 대부분 급등했다.
금융권에서는 정부가 20년간 하지 못한 일을 행동주의펀드가 해냈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마저 나온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과도한 규제와 정부의 시장 개입, 한국 재계 전반의 후진적인 지배구조, 낮은 주주 환원율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발생하는 문제”라면서 “정부가 이 문제를 해소하려면 법·제도적, 정치적으로 정교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