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장 12절은 놀라운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선을 행하고 덕을 쌓으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인간의 도덕적 성숙이 곧 천국을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그러나 구원과 영생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것이기에 어떤 선이나 덕을 세움보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으며 그분을 영접해야 합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마르다의 집에 들어가셨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셨을 때 마르다라는 이름의 여인이 예수님을 자기의 집으로 영접했습니다. 여기에서 ‘영접했다’는 말은 헬라어 ‘휘포데코마이’입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1장에서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와 연결돼 있는 ‘영접한다’는 말과는 다릅니다. 마르다의 영접은 손님으로 맞아들이는 것이고, 요한복음의 영접한다는 말은 받아들인다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두 단어는 문맥을 토대로 보면 그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르다의 영접은 예수님을 자기의 집으로 모셔 들이는 것이었지만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영생과 구원을 소망하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자기의 집으로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자기 삶의 현장으로 모셔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그저 교회 안에 머물게 할 뿐입니다. 신앙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자기의 집이나 직장, 삶의 자리로 모셔 들이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곳까지 오시는 것은 불편해합니다. 그러나 진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다는 것은 자신의 집으로, 삶의 처소로 예수님을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 모든 삶의 자리에 구원과 영생의 은총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자기의 집으로 모셔 들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좋은 자리를 드리는 것이면 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여동생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것만을 보면서 불편했습니다. 자신은 마음이 분주할 정도로 예수님을 섬기기 위해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데 동생은 그저 예수님 가까이에서 말씀만 듣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다못해 예수님께 말을 건넸습니다. 자기 동생 마리아를 내보내서 자신을 도와주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많은 일로 근심하지 말라. 한 가지만으로도 족하다”고 하시면서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않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행동은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것입니다. 수고와 헌신을 외면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이 본문을 통해 수고나 헌신의 귀중함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영접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마르다는 좋은 음식을 드리는 것이 예수님을 잘 영접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가장 잘 영접하는 것은 그분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귀담아듣고 순종하는 것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 시대 수많은 사람이 세상의 많은 소리를 듣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가르침을 따라 성경을 외면합니다. 그러나 구원과 영생을 원한다면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매일이 주의 말씀을 들음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과 생명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신현철 서울 마포중앙교회 목사
◇마포중앙교회는 1962년 4월 20일 설립됐습니다. 교회 비전은 ‘사람을 살리는 교회, 교회를 세우는 교회, 천국같이 행복한 교회’입니다. 비전을 이루기 위해 성도들은 ‘성령으로 섬기고, 예수로 자랑하고, 경건에 힘쓸 것’을 다짐하며 헌신합니다. 지역을 넘어 세계와 열방을 향해 거룩한 복음의 역사를 이뤄가기를 원합니다.